현진건의 소설 「불」은 1925년 《개벽》 1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당시 만연했던 조혼을 전면에 드러낸 작품으로, 매일매일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열다섯 살 소녀 순이의 고통을 내밀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린다.
「불」은 한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 조건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시집살이라는 관습은 순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고, 마침내 그녀의 저항마저 파괴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불’은 파괴의 상징인 동시에 침묵하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목소리이기도 하다. 현진건은 그 불길보다 먼저, 그 불길을 피워 올린 시대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강경애의 소설 「마약」은 1937년 《여성》 11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실직 후 아편에 빠진 남편에 의해 중국인 상인에게 팔린 아내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다.
주인공의 비극은 남편의 마약 중독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비극의 본질은 중독이 아니라, 중독으로 인해 한 여성이 돈으로 거래되는 현실에 있다. 그녀는 중국인에게 팔려가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끝내 죽음을 맞는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은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진다. 강경애가 끝까지 응시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상품처럼 사고팔 수 있는 사회와 그 안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여성의 운명이다. 여성은 아내이기 전에 재산처럼 거래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생존의 논리 앞에서 철저히 무너진다.
강경애 문학은 언제나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한다. 「마약」 역시 개인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 빈곤과 가부장제가 결합했을 때 여성의 삶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사회소설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끝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보다 돈과 권력이 앞섰던 시대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고발로 남는다.
백신애의 소설 「식인」은 1936년 《비판》 7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종종 ‘식곤’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한자 ‘困’이 ‘인할 인’을 뜻하기도 하고 ‘괴로울 곤’을 뜻하기도 해서 벌어진 일이다. ‘백신애기념사업회’에서는 『백신애 시대 영천을 거닐다』를 통해 ‘식인’이 바르게 읽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반영하여 ‘식인’을 제목으로 삼았다. 그러나 소설이 굶주림으로 인해 겪는 고난을 그린 만큼 무엇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백신애의 「식인」은 제목부터 독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 나면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제목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하찮게 취급되는 사회였는가 하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만삭의 몸으로 부농의 밭에 나가 일을 하다 밭에서 아이를 낳는다. 출산조차 노동을 멈출 이유가 되지 못하는 삶은 이미 극한의 빈곤을 말해 준다. 결정적인 장면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굶주림에 지친 그녀가 무심코 제(祭)에 쓸 음식에 손을 대려는 순간이다. 금기를 어겼다는 이유로 그녀는 무참히 폭행당한다.
백신애가 보여 주는 것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굶주림 앞에서 본능적으로 손을 뻗은 사람보다 의례와 신분 질서를 앞세우는 사회의 잔혹함이다. 생명보다 관습이 우선하고, 가난한 여성의 몸은 언제든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이 작품의 비극을 완성한다.
가난과 계급, 그리고 봉건적 질서가 결국 한 인간의 삶을 집어삼키는 과정을 그린 소설은 가장 작은 행동 하나를 통해, 시대 전체의 폭력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조선 문단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식민지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한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민족적 저항의식을 실천한 지식인이다. 1900년 대구에서 개화파 계열의 집안에 태어나 일본 도쿄 세이조중학교에 이어 상하이 후장대학 등에서 유학하며 국제 정세와 민족 문제에 눈을 떴다. 이러한 해외 경험은 그의 문학관과 민족의식 형성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고향> 등 여러 단편을 통해 폐색된 식민지 일상, 궁핍과 부조리에 직면한 소시민과 지식인의 삶을 예리한 구성과 간결한 문체로 형상화했다. 일제에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에 말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했으나 한결같이 친일 노선과 거리를 두고 창작을 이어갔으며, 1943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현실의 비극을 정면으로 끌어와 독자에게 윤리적 자각을 환기하는 그의 단편들은 한국 근대 단편소설 형식의 성숙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