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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 게임 -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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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 게임 -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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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마이클 슈왈비 (지은이), 노정태 (옮긴이) 
  • 출판사문예출판사 
  • 출판일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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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규칙에 따랐을 뿐인데 왜 점점 불평등해질까?
불평등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임의 규칙’을 밝힌다!

― 미국 대학에서 불평등 관련 과목의 교재로 사용되는 최고의 입문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극대화되고 중간계층이 사라지는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이미 ‘10 대 90’ 혹은 ‘1 대 99’ 사회는 친숙한 말이 되었고 심지어 ‘0.1 대 99.9’, ‘0.01 대 99.99’라는 수치까지 세간에 오르내린다. 이른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졌다는 건 공공연하거니와,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 착취에 기댄 산업 구조의 공고화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위험하지 않은 일자리를 구하는 일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사실 오늘날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이런 분석 자체가 이미 너무나 진부해져버렸다는 게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마이클 슈월비는 《야바위 게임: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를 통해 불평등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에 대해 묻는 것이다. 즉 ‘어떻게 이토록 불평등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불평등이 유지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토대가 되는 ‘사회학적 분석’과, 그에 대한 이해를 돕고 분석에는 담기지 못한 진실까지 드러내는 ‘허구의 이야기’를 오가면서, 다양한 시점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슈월비는 법, 정책, 관행, 일상을 규정짓는 ‘게임의 법칙’이 차별이 만들어내고 재생산하는 과정을 밝혀낸다. 그렇게 결국 그것이 ‘있는 자’들을 위해 조작된 ‘야바위 게임’임이 드러난다. 또한 성별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통해 게임을 유지하고, 우리 스스로 이러한 불평등을 승인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밝혀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현 체제의 ‘대안은 없다’는 무기력한 세계관을 넘어, 연대를 통해 새로운 대안과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의 해방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를 탐구한다.

출발점: 이 불평등을 보라!
슈월비는 독특한 강의를 통해 불평등의 현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강단 앞에 10명의 학생을 앉힌다. 각각이 미국 인구의 10퍼센트를 상징한다. 다시 종이 접시 10개를 꺼낸다. 각각은 미국의 부의 10퍼센트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장 부유한 10퍼센트부터 가장 가난한 10퍼센트까지, 미국 인구가 소유한 부의 양과 동일하게 접시를 나눠준다. 가장 부유한 10퍼센트에게는 무려 접시 7개, 즉 부의 70퍼센트가 돌아가지만, 가장 가난한 60퍼센트에게는 각각 6분의 1조각만이 돌아간다. 학생들의 탄식이 나온다. 슈월비는 마지막 몇 조각은 정말 작아져야 하지만, 종이 접시를 그렇게 자르기 힘들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부의 분배에 있어서 극단적인 불평등은 사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리고 슈월비는 딱딱한 도표와 수치 대신, 종이 접시를 통해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실태가 생각의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불평등이 얼마나 심한지에 대해 전하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나아가 불평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질문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부의 기원: 절도·약탈·착취
자원의 불평등은 자연현상 같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슈월비는 평등한 사회를 먼저 상정하고, 어떻게 그 사회가 불평등해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답은 세 가지이다. 같은 집단 내의 자원을 ‘절도’하거나, 집단 밖의 외부자를 ‘약탈’하거나, 보호비를 뜯어내거나 노동의 결과물을 부당하게 가져가는 식의 ‘착취’를 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사유실험이지만, 실제 역사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인류는 약 15만 년 전에 출현한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평등하게 살아왔다. 이것이 뒤바뀐 건 1만 2,000년 전 정착된 농경 생활의 출현 이후이다. 잉여생산물이 생겨나자, 소수가 불평등하게 자원을 분배하고 더 차지하게 되었으며, 결국 계층화된 사회가 탄생한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불평등의 기원으로서의 절도·약탈·착취에 대해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절도·약탈·착취가 계속해서 이루어져왔음이 드러난다. 슈월비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약탈과 착취와 학살, 아프리카인을 노예화한 일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한국의 경우에도 일제 아래에서의 피식민지 역사와 이후 가혹한 노동조건에 의한 경제발전은 절도·약탈·착취가 근현대까지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불평등을 유지하는 방법
① 게임을 조작하라!
부의 기원만으로는 왜 불평등이 계속 유지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지배계층은 약탈적이거나 착취적인 관계를 장기간에 걸쳐 안정화시켜야만 한다. 슈월비는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규정하는 ‘게임의 규칙’을 조작함으로써 불평등의 재생산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물론 속임수나 매수 같은 방식도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규칙 자체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이런 조작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이 규칙을 어기지 않고 따르는 것만으로도 불평등이 자동적으로 발생하고 재생산된다.

예컨대 자본주의라는 게임이 참여한 관리자는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임금은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가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없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그들은 게임판 바깥으로 쫓겨날 테니 말이다. 나아가 슈월비는 ‘소유권이 인권에 우선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한다. 자산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굶어죽든 말든, 자신의 농장과 공장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법을 통해 뒷받침된다. 사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임의 규칙이지만, 슈월비는 이러한 통념이야말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지배계층은 국가를 차지하고자 애쓴다. 물론 경제적 착취자가 곧 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속한 경제적 계급이 국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차지한다는 것은 곧 경제활동에 적용되고 부의 분배를 결정짓는 규칙들을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사회복지의 수준을 정하고, 이민 정책을 만들고, 최저임금을 설정하고, 무역협정을 맺고,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것 모두를 결정할 권한을 갖는 것이다. 게다가 경찰과 군대를 통제하여, 불평등한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 드는 이들을 통제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다.

슈월비는 ‘게임의 규칙’의 조작을 통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체적인 사례 역시 제시한다. ‘노동법’을 그대로 따르면 노동자들의 단결이 어려워진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판결이 자연스레 돈 있는 자가 선거 과정에 개입할 길을 열어준다. ‘법인’의 이름 뒤에 숨어 자본가들을 책임을 회피한다. ‘세법’에 착실하게 따르는 것만으로 양극화가 심화된다. 계층에 따라 시작점이 다른 모든 수험생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함으로써 계층의 세습이 강화된다. 우리가 시스템을 움직이는 규칙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② 상상력을 억압하라!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이러한 규칙이 정당할뿐더러, 자연스럽고 불가피하게 보인다. 슈월비는 이러한 인식이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신념 체제’로서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눈으로 현실을 보면, 불평등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상상력마저 제약하고 만다.

예컨대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는 현실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경쟁과 불평등은 당연하며 협동과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월한 혹은 평범한 ‘인간’과 착취하거나 폭격해도 마땅한 ‘타자’를 구분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여성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선명한 예다). 계층에 따라 출발점이 다른데도 모든 학생이나 구직자가 동등한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패배자들이 체제가 아닌 자기 자신을 탓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기존의 체제와 규칙이 완전하진 않더라도,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의 통제가 중요하다. ‘대안적인 선거제도나 의료체제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힘들게 해서 현재 존재하는 시스템만이 유일하다는 인식을 심고, 노동운동사 같은 투쟁의 역사를 지워버림으로써 변화의 길을 여는 조직과 집단행동의 힘을 볼 수 없도록 하라. 기업 내 민주주의는 혼란을 불러올 뿐이며, 하향식 통제가 비록 권위적이지만 효율성을 담보한다고 믿게 하라. 임금이 공정하지 않더라도 시장논리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게 하라.’

이 모든 현실 정의는 현재의 불평등한 체제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게 만들고, 대안을 추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③ 행동을 제약하라!
단지 행동하지 않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람들이 조작된 게임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조작된 게임이라도 참여자들에게 물질적 재화와 정서적 보상을 제공한다. 슈월비는 이를 ‘개평’과 ‘정체성의 근본’, 그리고 ‘책임의 그물’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우리는 대학교에 진학함으로써 좋은 직장을 얻기를 바라며, 직장에 취업함으로써 임금을 받고자 한다. 하지만 학교나 직장에 다님으로써 얻는 것은 이런 주된 보상만이 아니라 일종의 ‘개평’도 포함된다. 즉 학생은 학창생활을 즐길 수 있고 성인으로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에 놓인다. 직장인은 일자리를 통해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일원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때로는 직장의 임금이나 대우나 전망이 형편없더라도, 이러한 ‘개평’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비참과 불평등을 감내하며 직장생활을 계속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게임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해주는 ‘정체성의 근본’이 확보된다. 우리는 자식으로서 가족의 일원이고, 학생으로서 학교의 일원이고, 노동자로서 일터의 일원이며, 시민으로서 국가의 일원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일관성을 부여해준다. 따라서 이런 자리에서 탈락한다는 것은 곧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들리는 위기상황이다. 결국 ‘개평’과 ‘정체성의 근본’이라는 보상은 게임이 조작되었다는 걸 알더라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은 ‘책임의 그물’이라는 망을 구성한다.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에 임한다는 것은, 역으로 개인에게 집단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무시당하거나 처벌을 받거나 해고당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 노동자, 지도자, 경영자, 경리부장, 경비, 경찰, 판사, 정치인, 담보대출 채권자, 배우자, 부모, 자녀 등은 다양한 역할에 맞는 책임을 짊어지도록 만드는 복잡한 관계의 집합을 구성한다. 여기서 일탈하면 단지 당사자들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관계의 집합 전체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자본주의적 책임의 그물에 포박되는 것이다.

④ 젠더와 인종에 대한 차별을 이용하라!
경제적 불평등과 젠더·인종을 둘러싼 지위의 불평등이 어떤 관계인가는 매우 중요하지만 풀기 힘든 난제이다. 슈월비는 어떤 불평등이 더 근본적인지 순위를 매길 수 있다는 식의 ‘억압의 위계’를 부정한다. 그는 계급·젠더·인종 같은 주어진 개념에서 출발하는 대신,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와 과정과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른 시각을 열어준다.

이를 통해 슈월비는 젠더·인종에 대한 차별이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연대를 방해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젠더로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타고난 본성’이라고 받아들이고 남성성을 더 우월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가부장제적인 지배를 정당화하고 여성에 대한 착취를 강화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범주인 ‘인종’을 우월함과 열등함을 구분하는 잣대로서 사용하는 것은, 이른바 유색인종에 대한 노예화와 착취를 정당화하고 강화한다.

나아가 이는 착취당하는 이들이 연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갈라치기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가난한 백인 남성은 ‘여성’이나 ‘유색인종’에 비해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약간이나마 누리는 특권에 목을 매게 만든다. 그들 역시 착취당하고 있으면서도 더 큰 착취를 당하고 있는 ‘여성’·‘유색인종’과 연대하는 대신에, 자신을 지배 집단의 일부로 여길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사소한 정체성의 징표에도 매달리게 된다. 결국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현실 정의에 붙들리고 마는 것이다.

불평등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렇게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자연현상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게임의 규칙과 불평등의 재생산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은 주어진 현실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생각을 벗어나고, 민주주의적 이상과 자본주의적 현실 사이의 모순에 향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해주는 상상력의 해방이 필요하다. 이는 경제 영역까지 포함한 보다 넓은 영역에서의 민주주의를 모색하고 극심한 불평등을 넘어설 수 있는 제도적 상상력까지 넓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날 개인의 노력으로 상상력이 해방되고, 놀라운 제도를 고안해내어 사회를 뒤바꾼다는 공상은 공허할 뿐이다. 슈월비는 결국은 연대와 조직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는 특히 ‘대항문화’와 ‘연대의 문화’의 비교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타자화되고 멸시당하는 소수자들은 ‘대항문화’를 형성한다. 대항문화는 가치와 규범을 거부함으로써 지배 집단을 전복하는 듯한 만족감을 주며, 자기 집단 안에서 지위와 존중이라는 상징적 보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대부분 상징적인 차원에 머물기 때문에 조작된 게임을 전복할 수 없으며, 때로는 그들을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릴 핑계를 제공하여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소재가 되어버리기까지 한다.

‘연대의 문화’는 다르다. 슈월비는 연대의 문화를 구성원들이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투쟁에서 서로를 지지하면서 창조해낸 새로운 생각, 가치, 관습으로 정의한다. 예컨대 연대의 문화 안에서, 노동자들은 투쟁 과정에서 물질적·정서적 보상이 위협받을 때 상호부조를 통해 서로를 보조해준다. 이는 물질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평’과 ‘정체성의 근본’의 차원에서도 작용한다. 또한 투쟁 과정에서 사회의 게임이 어떻게 조작되어 있는지, 그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는지,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분석하게 된다. 이는 집단적인 상상력의 해방이며, 새로운 저항과 규칙을 발명하고 협동조합 같이 착취적이지 않은 기업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슈월비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주요 사례로 다루지만, 연대의 문화는 인종차별에 맞서든 여성차별에 도전하든 조직적 투쟁의 과정이라면 어디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연대의 문화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사람들의 분노를 일깨우는 것을 넘어서, 현 상태를 깨뜨리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본질을 밝혀내는 ‘이야기’의 힘
앞서 ‘종이 접시 나눠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이클 슈월비의 최대 강점은 번쩍 눈이 뜨이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특히 사회학적 분석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세 편의 소설은 백미이다. 3장 “아홉 식구가 사는 골짜기”는 평등하던 사회가 절도와 착취를 통해 불평등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피해 보상을 둘러싼 도덕적 논쟁을 제시하며, 기원의 범죄가 어떻게 신화를 통해 망각되는지를 보여준다. 5장 “연막”은 하드보일드 범죄소설 형식을 통해 일상적 행위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것과 국제적인 폭력의 유사성 및 연관 관계를 사유하게 해준다. 7장 “라니아 O와의 인터뷰”는 2084년 시점에서 한 활동가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국제적 투쟁을 상기시키며, 변혁의 조건과 가능성에 대한 묵직한 사유를 던져준다.

이 이야기들은 다른 장들에서 논하고 있는 사회학적 분석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울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기지 못한 이면의 진실들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불평등한 규칙 및 사회와 마주한 개인이 느끼는 분노와 도전, 공포와 외면, 망설임과 무관심 같은 감정에 대해, 불평등한 집단의 특성과 그것을 넘어서 평등한 집단을 구성하는 일이 마주하게 하는 도전과 응전에 대해 사유할 틈새를 열어주는 것이다.

《야바위 게임》은 정치한 사회학적 분석과 흥미로운 허구적 이야기를 오가는 독특한 구성과 쉬운 문체 덕분에, 미국의 10개 이상의 대학에서 불평등 관련 수업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자가 불평등한 사회의 탄생과 재생산에 대한 다층적인 모델을 그려보고, 나아가 그것을 넘어선 대안의 구성하는 상상력을 열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 독자에게도 불평등 논의에 대한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이며, 나아가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눈을 열어줄 것이다.

저자소개

마이클 슈월비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다. 그가 쓴 《야바위 게임》은 미국 10개 이상의 대학에서 불평등 관련 수업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마이클 슈월비는 이 책에서 오랜 세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불평등을 강의해온 노련한 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득 격차에 따라 대학 진학률이 크게 달라지는 미국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그 누구보다도 쉽고 설득력 있게 경제적 불평등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전달한다. 눈을 번쩍 뜨지 않을 수 없는 사례를 보여준 후, 불평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지속되는지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야바위 게임》은 불평등 이론의 연구자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전공 분야를 설명하고자 한 최고의 결과물이다.
마이클 슈월비의 주요 저서로 Unlocking the Iron Cage: The Men’s Movement, Gender Politics, and American Culture(1996), Remembering Reet and Shine: Two Black Men, One Struggle(2004), The Sociologically Examined Life: Pieces of the Conversation(2007), Smoke Damage: Voices from the Front Lines of America’s Tobacco Wars(2011), Manhood Acts: Gender and the Practices of Domination(2014) 등이 있다.

목차

제2판 서문

들어가는 말: 불평등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생각하기
불평등의 재생산을 연구하기
오늘날의 관점
은유로서의 게임
이야기에 대하여
주석에 대하여
앞으로 펼쳐질 내용

1장 불평등의 뿌리
자원
관계, 관행, 절차
‘억압의 위계’ 문제를 어떻게 피할 것인가

2장 야바위 게임
규칙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구체적인 사례들
시스템의 작동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기

3장 아홉 식구가 사는 골짜기 (이야기)
함께 고민해볼 생각거리들

4장 상상력에 족쇄를
현실 규정하기
사생활은 없다
의심하게 하기, 한눈팔게 만들기
권력의 속성에 대한 메모

5장 연막 (이야기)
함께 고민해볼 생각거리들

6장 행동을 규제하라
개평과 근본
책임의 그물
남자답게 굴기
반대 의견 묵살하기

7장 라니아 O와의 인터뷰 (증언)
함께 고민해볼 생각거리들
덧붙이는 글

8장 불평등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상상력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규칙 만들기
연대의 문화를 향하여
월가 점령 운동, 어떻게 봐야 할까?
도덕적 배경 규칙에 도전하기
위기와 기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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