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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설화 -

제임스 S. 게일 | 위즈덤커넥트
  • 등록일2025-08-18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545 K  
  • 지원기기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 보유현황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 평점 평점점 평가없음

책소개

<미리 보기>
어떤 사람은 동양에서는 강하고, 진실하며,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400년 이상을 전해 내려온 자란의 이야기를 보면 그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에는 아직도 바로 어제의 로맨스 같은 상큼함과 달콤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동양의 분위기 덕에 이야기의 배경이 이상야릇하고 흥미로울지라도 말이다.
***
조선 성종(1488~1495) 시절, 조선의 어느 유명 인사가 평안 감사가 되었다. 평안도라면 풍류객들 사이에서 조선 팔도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지방이다. 평안도에는 훌륭한 문인과 가객들이 많아서 조정에서도 솜씨를 뽐낼 정도였다.
이 이야기의 시절에 평안도에는 유명한 기녀가 하나 있었으니, 그 이름을 자란(紫鸞)이라고 했다. 자란은 무척 아름다웠으며, 노래와 춤 또한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 자질이 비상하였으니, 고문에 능통하고 역사에도 해박하였다. 기생 중에서도 총명이 으뜸이었으니, 이내 유명해져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평안 감사에게는 열여섯 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용모가 그린 듯이 준수하였다. 비록 어리지만, 한학에 능통하고 학문적인 재능이 출중하였다. 판단력이 뛰어나고 시문에 대한 안목 또한 밝아, 붓을 들어 문장을 쓰면 쓰는 대로 명문(名文)이었으니, 기동(奇童 : 재주와 꾀가 많은 아이)으로 이름이 높았다.
감사에게는 아들이고 딸이고 다른 자식이 없었으니, 외아들을 지극정성으로 아꼈다. 감사의 생일이 되자 여러 관리와 손님이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는 기생 여럿과 많은 악공(樂工)도 모여 있었다. 연회가 무르익자, 감사는 아들을 불렀고, 기생의 우두머리에게 명하여 자리에 모인 기생 중 가장 예쁜 기생을 고르게 하였으며, 그 기생이 아들과 함께 춤을 추어 하객의 흥을 돋도록 명하였다. 이 말을 듣자 기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자란을 추천하였다. 재능과 기량을 두루 갖추었으며 나이 또한 감사의 아들에 딱 맞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둘이 함께 나와 춤을 추자, 그 모습이 버드나무가 살랑거리듯 우아하고, 제비처럼 가볍게 나풀거리는 것이 마치 선녀(仙女)가 춤을 추는 듯하였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흠뻑 빠져들었다. 감사 또한 몹시 흡족하여 자란을 불러 연석(宴席)에 앉히고는 진수성찬을 함께 하도록 하였으며, 비단을 선물로 주었고, 그날 이후로도 그의 아들을 시중들도록 명하였다.
생일잔치 이후로 그 둘의 우의(友誼)는 깊어졌고, 서로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둘의 사랑은 고금의 이야기를 통틀어도 드물 정도로 깊어만 갔다.
감사의 임기가 6년이나 더 연장되어 그들은 평안도에 계속 머물렀다. 그러나 결국,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으니, 평안 감사 내외는 아들이 자란과 헤어지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억지로 둘을 떼어놓자니 아들이 상사병으로 죽을까 걱정이고, 부인도 아닌 자란을 같이 데려 가자니 아들의 명망이 걱정이었다. 내외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그 문제를 아들이 직접 정하게 하였다. 내외는 아들을 불러 말을 꺼내었다.
"부모라 할지라도 아들의 남녀문제를 마음대로 좌우하지는 못하겠구나. 어쩌면 좋겠느냐? 네가 자란을 아끼는 마음이 깊으니 헤어지기가 참으로 어려울 테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몸으로 기생을 옆에 두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못하구나. 혼삿길이나 벼슬길에도 좋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양반으로서 첩을 들이는 것은 흠이 아니니, 네가 생각하기에 좋은 대로 하여라."
아들이 대답하였다.
"어려울 거 없습니다. 자란이 눈앞에 있을 때는 제 전부나 다름없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자란도 헌신짝처럼 한쪽에 치워둘 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걱정하지 마소서."
감사 내외가 참으로 기뻐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사내답구나."라고 하였다.
<추천평>
"한국 전설 속의 다양한 초월적 존재들과 귀신, 기인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도서이다. 짤막한 이야기들이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판타지와 괴담의 다양한 소재와 모티프를 경험할 수 있다."
- 위즈덤커넥트 편집부

저자소개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 대다수보다 더욱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해박했던 사람. 제임스 S. 게일은 1888년 스물다섯 살에 선교사로서 조선에 입국하여 조선의 마지막 10년을 겪은 뒤, 1898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하였다. 해당 원서는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출간하였고(공저), 1895년 영국 작가 John Bunyan의 『The ilgrim’s Progress(1678)』를 순 우리말로 번역해 『텬로력뎡(천로역정)』이란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1888년 이 땅에 발을 처음 내디딘 지 불과 7년 만에 번역서를 출간할 정도로 그는 우리말에 통달하였다.

게일은 정동에 모여 살던 다른 서양인들과 달리 서양인이 살지 않는 곳에서 조선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살며 사랑방에 앉아 한학을 공부했다. 『논어』를 읽고 양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그야말로 수많은 고전과 우리 조상의 저서를 읽고 번역하였다.

그는 세계 최초로 우리 문학을 서양에 번역, 출간하였다. 청파 이륙의 『청파극담(1512)』과 수촌 임방의 『천예록』에 전하는 이야기를 모아 『Korean Folk Tales』라는 이름으로 1913년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하였고, 서포 김만중이 1687년 쓴 『구운몽』을 『The Cloud Dream of Nine』이라는 제목으로 1922년 영국에서 출간하였다. 또한 『심청전』과 『춘향전』도 번역하였다.

어마어마한 저술을 남긴 그는 진정한 한국학자였다. 사십 권이 넘는 국영문 저서를 출간하고, 조선과 조선인에 관한 수백 편의 논문 및 기고문을 남긴 대학자이다. 1895년 『동국통감』을 번역하여 우리 역사를 서양에 소개했고, 단군 조선에서 삼국시대, 고려, 심지어 자신이 직접 겪은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집대성하여 <A History of the Korean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무려 4년간 잡지에 연재하였다.

그는 구한말 역사의 현장에서 너무도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대원군을 만났고, 대원군의 장손이자 고종의 조카인 이준용과도 알고 지냈다. 고종의 아들 의화군과 친구였고, 이범진, 박영효, 이상재 등 수많은 관리들과 밀접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미국 유학을 위해 추천장을 써주기도 했다. 청일전쟁의 현장에 있었고, 고종의 고문이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명성왕후가 시해되던 날 고종을 알현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서와 다른 기록으로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낯선 이 땅과 그 위의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를 사랑했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이러한 저자가 우리에 대해 관찰하고 기록하여 출간한 최초의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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