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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세기의 작가 전집 069: 오노레 드 발자크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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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세기의 작가 전집 069: 오노레 드 발자크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오노레 드 발자크 
  • 출판사작가와 
  • 출판일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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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발자크의 『안녕』 서평: "미소는 나를 죽이죠" - 19세기 트라우마, 21세기의 거울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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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안녕』(Adieu)을 읽고 난 후, 나는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책장을 덮었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마치 베레지나 강의 얼음장 같은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 발자크. 그의 방대한 '인간 희극' 연작 중에서도 이 단편은 낯설고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흔히 발자크 하면 떠오르는 사실주의적 사회 묘사 대신, 이 작품은 인간 심연의 어둠, 그중에서도 '트라우마'라는 심해를 탐사한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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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발자크의 작품 중에서도 "어떻게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현대 독자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준다. 나 역시 동의한다. 1830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나폴레옹 전쟁의 참상, 특히 베레지나 강 도하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다. 발자크는 전쟁의 광기 속에서 개인의 정신이 어떻게 파괴되고, 또 어떻게 (혹은 어쩌면 영원히)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는지를 예리하게 파고든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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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사냥을 즐기던 두 남자, 필립 드 쉬시와 달봉 후작이 우연히 낡은 수도원에서 이상한 여인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이 여인은 과거 필립의 연인이었던 스테파니 백작부인. 그녀는 베레지나 강 도하의 끔찍한 경험으로 인해 정신을 놓고, 오직 "안녕(Adieu)"이라는 단어만을 반복한다. 이 단어는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신에게 가다(a Dieu)"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영원한 이별, 즉 스테파니의 파괴된 영혼을 상징한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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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이 작품에서 놀랍도록 현대적인 시각으로 트라우마를 다룬다. 옮긴이의 지적처럼, 19세기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의학적 개념조차 없었지만, 발자크는 필립과 스테파니를 통해 이 증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특히 베레지나 강 도하 장면은 압권이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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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자, 아이, 말들 - 모두 다리로 몰려들었다. 다행히도 백작부인을 안고 있던 소령은 아직 다리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에블레 장군은 방금 반대편 강둑에 있는 다리 지지대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다리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다리가 사람들로 가득 찬 채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강둑을 향한 인파의 맹렬함이 너무 심해서 눈사태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강으로 쏟아져 들어갔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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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도와 같은 묘사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재현을 넘어선다. 발자크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 잔혹함, 그리고 연약함을 냉정하게 포착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회적 계급과 성별에 따라 전쟁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성 군인인 필립과 귀족 여성인 스테파니는 같은 비극을 겪지만, 그 상처의 양상은 전혀 다르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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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필립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필립은 스테파니의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 베레지나 강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이는 현대 심리학의 '노출 치료'와 유사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비극으로 끝난다. 스테파니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만, "안녕, 필립. 사랑해, 안녕!"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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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녀가 죽었소." 대령이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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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의사는 조카의 생명 없는 몸을 받아 안았다. 마치 젊은이처럼 그녀에게 입맞춤한 뒤, 그녀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 장작더미 위에 그녀를 안은 채 앉았다. 그는 백작부인을 보고 떨리는 약한 손을 그녀의 가슴에 얹었다. 그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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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숭고하면서도 잔혹하다. 발자크는 트라우마의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비관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 비극 속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발견한다. 필립의 필사적인 노력, 스테파니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늙은 의사의 연민은 인간 존재의 깊은 연결고리를 보여준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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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마지막, 겉으로는 쾌활하게 살아가던 필립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미소는 나를 죽이죠." 그의 마지막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는 트라우마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평생 개인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수 있음을 암시한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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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나 로맨스가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 정신의 나약함, 트라우마의 파괴력,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탱하는 희망의 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전쟁과 폭력, 재난이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이 작품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발자크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안녕'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상처와 싸우고 있는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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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발자크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19세기 프랑스어의 복잡한 문체를 현대 한국어로 옮긴 번역가의 노력 덕분이다. 특히, 옮긴이는 '의역본'이라는 접근법을 택해 원문의 의미와 뉘앙스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 한국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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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문학, 역사, 심리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이다. 또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 혹은 그들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책은 깊은 위로와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발자크의 『안녕』은 19세기의 비극을 통해 21세기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거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1799년 5월 20일 프랑스 투르(Tours)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발자크의 모친은 자녀에게 무심한 편이어서 낳자마자 아들을 유모의 집에서 기르게 했고, 이어서 그를 오라토리오회 수도원 기숙학교에 넣고서 찾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유년기를 보낸 이 시절의 외로움과 슬픔은 그의 소설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ee)》에 잘 나타나 있다. 1814년 가족이 파리로 거처를 옮기게 되자 발자크는 파리에서 학업을 이어 가게 된다. 그는 법학 공부를 하는 이외에 소송 대리인과 공증인 사무소의 수습 서기로 일하면서 법률 실무를 익힌다. 이 시기에 얻은 법률 지식과 경험은 이후 그의 소설 창작의 밑거름이 되어 《인간 희극》에서는 법률문제와 관련한 많은 사건이 등장하며 풍부한 법률 지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1819년 발자크는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파리의 비좁은 다락방에 갇혀 지내며 문학 습작하는 생활에 전념한다. 첫 작품은 운문 비극 〈크롬웰〉이었고, 이후 몇몇 소설들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친구들과 공동 작업으로 당시 유행하던 모험 소설들을 출간하기도 했다. 1825년 문학 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발자크는 사업에 뛰어들어 재정적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출판사와 인쇄 및 활자 제조소 운영으로 이어지는 발자크의 사업은 2년 만에 실패로 끝났고 발자크는 파산에 이르러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다. 이후 문학의 길로 되돌아 왔으나 그는 평생 빚에 쫓기면서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써야 하는 고달픈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이후 《인간 희극》에 포함된 《마지막 올빼미당원(Le Dernier Chouan)》이 1829년 발표되면서 발자크의 작품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한다. 이해에 나온 《결혼 생리학(La Physiologie du mariage)》은 세간의 큰 주목을 받으며 호응을 얻었다. 1830년부터는 파리의 여러 살롱을 다니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추구했다. 1833년부터 1835년에 이르는 동안 발자크는 소설가로서 당시 낭만주의 문학을 벗어나 자신의 확고한 창작 세계를 형성한다. 이 시기에 《고리오 영감(Le Pere Goriot)》을 비롯해 《외제니 그랑데(Eugenie Grandet)》, 《루이 랑베르(Louis Lambert)》, 《세라피타(Seraphita)》 등 많은 소설이 발표되었다. 발자크는 앞선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을 재등장시키는 독특한 기법을 《고리오 영감》에서 처음 시도한 이후 이 기법을 계속 사용하면서 자신이 이미 쓴 작품들과 앞으로 쓸 작품들을 연계해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완성할 계획을 했다. 1841년 이 총서의 제목을 《인간 희극》으로 정하고 첫 권에 서문(Avant-Propos)을 붙여 소설에 대한 자신의 개념과 작품들이 이어지는 원칙을 밝힌다. 그러나 애초에 130여 편의 소설들로 구상했던 작품집은 1850년 발자크가 서거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겨진다. 한편 발자크의 건강은 과도한 집필 활동과 재정적 압박으로 인해 차츰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1850년 1월 결혼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던 발자크의 건강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해 3월 결혼식을 올리고 5월 우크라이나를 떠나 파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혼집에 도착한 뒤 발자크는 더 이상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3개월 만에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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