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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 중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실제로 일어난 또는 일어나려는 주요한 변화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나 전망 없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엄청난 인상들의 홍수나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가치에 혼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이보다 더 많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파괴되고, 이보다 더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며, 인간성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이처럼 깊이 끌어내려진 사건은 없었던 것 같다.
과학마저도 그 객관적인 공정함을 잃었다. 과학의 열정적인 추종자들은 이제 그 도구를 적과의 싸움에 동원하는 데에 앞장서게 되었다. 인류학자는 상대가 열등하고 약하다고 선언해야 하고, 정신과 의사는 그가 정신적으로 병들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시대의 문제들에 우리가 지나치게 영향받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다른 시대의 문제들과 이를 함부로 비교할 권리가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직접 전장에 나서지 않고, 거대한 전쟁 기계의 일부가 되어버리지 않은 개인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좌절과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그가 자신의 처지를 더 분명히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조그마한 제안이라도 환영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전쟁 속에서 집에 남아 있는 이들이 영적으로 아파하는 이유 중 두 가지, 즉 전쟁이 가져온 실망과, 전쟁이 우리에게 - 다른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 강요하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특히 언급하고 논의할 만하다.
내가 실망을 언급하면, 누구나 즉시 그 의미를 이해한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고통은 인간 경험에서 자연스럽고 심지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목표와 방법을 비판할 수 있으며 전쟁이 끝나기를 바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예전에, 국가들이 너무 다르게 살아가고, 각각 개인 생명에 대해 다른 가치를 두며, 그들 사이의 적대감이 강한 심리적 힘으로 남아 있는 이상 전쟁이 끝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가 막연히 받아들였던 것은 아직도 원시적 국가와 문명국가, 또는 피부색이 다른 민족, 그리고 부분적으로 계몽되고 대체로 발전한 유럽의 민족들 사이에는 전쟁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을 희망을 감히 품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인류의 선도자라 할 수 있는 백인 종족의 주요 국가들, 우리에게 기술과 예술 및 과학의 문화 기준을 남긴 이 국가들이 상호 불일치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리라고 기대했다.
이들 각 국가는, 문명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는 개인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했다.
이러한 매우 엄격한 규칙들은 개인에게 큰 자기 통제와 욕구의 포기를 요구했다. 무엇보다도, 경쟁 중에 너무나 유혹적인 거짓말과 속임수를 엄격히 금지했다. 문명국가들은 이러한 도덕적 기준을 자신의 존립 기반으로 여기며, 누군가가 이를 위협하면 곧바로 개입했고, 심지어 이를 지적으로 의문시하는 것마저 잘못된 일로 간주했다. 그래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스스로도 이를 존중하며,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반에 위배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명국가들 사이에도 대체로 미움받는 소수 집단이 있었고, 이들이 문명의 일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자격 증명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국가들 자체는, 고대와 달리 "외국인"과 "적"이라는 말이 이제 더 이상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관용할 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문명국가 간의 연대에 대한 믿음 속에, 수많은 사람들은 친근한 관계에 대한 믿음으로, 낯선 땅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특정한 곳에 얽매이지 않은 이들 역시 많은 문명국가의 모든 이점과 매력을 새로운, 더 큰 고향처럼 아무 문제 없이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은 파랗고 회색 바다, 눈 덮인 산, 초록빛 저지대, 북쪽 숲의 매력, 남쪽 식물의 장대함, 깊은 역사가 깃든 장소의 감촉,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평온을 모두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고향은 또한 박물관이었는데, 전 세계 예술가들이 수세기에 걸쳐 쌓아올린 보물들이 가득했다. 그는 이 박물관의 다양한 전당을 거닐며, 멀리 떨어진 동족들이 혼혈, 역사, 각 고장의 특색을 통해 이루어낸 다양한 위대한 형태들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저마다 냉정하고 단호한 의지가 최고의 수준에 이른 곳, 삶을 아름답게 꾸미는 예술의 우아함이 빛나는 곳,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정신, 그리고 인간이 땅의 주인이 되게 한 다른 자질들이 발전한 곳 등 다양한 뛰어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추천평>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프로이트의 작품 중 가장 접근하기 쉽고 문체가 우아한 작품 중 하나이다. 나는 일반 대중과 프로이트의 작품에 대해 더 잘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에세이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그가 논증을 형성하는 방식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그의 핵심 아이디어의 불꽃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제시하는 다소 비관적인 생각이 위안이 되지도 않고 심지어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 LLima, Goodreads 독자
"전쟁과 불의/부정 사이의 균형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 그리고 개인이 점진적으로 폭력적인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서도 정신적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더라도 사회가 어떻게 그 균형에 죄책감을 부과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화해의 희망을 파괴할 결과를 낳는다. 전 세계에서, 그리고 모든 시간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일이다."
- John nakafaoud, Goodreads 독자
"이 책은 아마도 내가 읽은 프로이트의 글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일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행위에 대한 미지근한 방어와 반전주의적 관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런 다음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 자체와 죽음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전쟁에서의 죽음, 그리고 평범한 삶에서의 죽음,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우리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다른 죽음들, 우리가 진지하게 고려하기를 거부하는 우리 자신의 죽음, 그리고 어쩌면 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을 저자는 낱낱이 드러내 보인다."
- Nick, Goodreads 독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 프라이베르크(지금은 체코의 프리보르P??bor)에서 유대인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정신분석학은 환자와 분석가 간의 대화를 통해 정신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는 병리 현상을 평가하고, 이를 통해 도출된 독창적인 ‘마음과 인간 행위’ 이론을 적용하여 치료하는 학문이다.
프로이트는 1881년 빈(Vienna)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의학 학위(MD)를 받았다. 1885년 교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을 이수하자마자 신경병리학 강사로 임명되었고, 1902년엔 겸임교수가 되었다. 1886년 빈에 개인 의원을 개원하여 환자들을 치료하는 생활을 하다가, 1938년 3월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 뒤 1년 만인 1939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꿈의 해석》 《정신분석학 입문》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토템과 터부》 《억압, 증상 및 불안》 《꿈 심리학》 《쾌락 원칙을 넘어서》 《새로운 정신분석 입문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