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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저자들은 사회와 정부를 혼동하여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 둘은 다를 뿐 아니라 기원도 다르다. 사회는 우리의 필요에서 출발하지만, 정부는 우리의 악행에서 비롯된다. 사회는 우리를 결속시켜 행복을 증가시키는 반면, 정부는 오직 우리 안의 악덕을 억제함으로써만 행복을 증진한다. 사회는 교류를 촉진하지만, 정부는 분열을 유발한다. 사회는 도움을 주고, 정부는 처벌을 내린다.
사회는 언제나 선한 것이지만, 최상의 정부조차도 결국은 피할 수 없는 악에 불과하다. 최악의 경우,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해로운 존재가 된다. 만약 우리가 정부로 인해 받는 피해가 정부가 아예 없는 상태에서 겪을 수 있는 혼란과 같거나 더 크다면, 오히려 더 심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을 우리가 스스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란, 마치 옷이 우리의 순수함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표시인 것과 같다. 왕의 궁전은 한때 낙원이었던 곳 위에 세워진 것이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양심 소리에 귀 기울이고 온전히 따른다면, 입법자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각자는 자신의 일부 재산을 안전을 위해 내어주게 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적은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안전이 정부의 주요 목적임을 생각할 때,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이익을 주는 정부 형태가 다른 어떤 형태보다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목적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세상과 분리된 외딴 곳에 소수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정착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이들은 자연상태에서 가장 먼저 사회를 이루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필요에는 한계가 있고, 혼자서는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서로 협력하고, 도움도 주고받게 된다. 네다섯 명이 힘을 합치면, 황무지에도 쓸 만한 오두막을 지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도 아무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혼자서는 나무를 베어도 옮기거나 세울 수 없고, 끊임없는 굶주림은 그 사람의 모든 일을 방해할 것이다. 어떤 질병이나 사고로 생명이 위협받더라도, 반드시 죽지는 않더라도 생존 가능성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필요라는 중력과도 같은 힘에 의해, 정착민들은 곧 사회를 결성하게 된다. 서로의 이익이 보장되는 한, 법과 정부 없이도 정의롭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악이 전혀 없는 곳은 천국뿐이므로, 초기의 어려움이 지나면 사람들은 점점 서로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정부의 필요성이 드러난다.
적당한 나무 한 그루를 '의사당'으로 삼아, 식민지의 모든 사람이 함께 공적인 일을 결정하게 된다. 그들의 첫 번째 법은 그저 '규정'이라는 이름을 가지며, 처벌은 공개적인 망신으로만 그쳤다. 처음에는 모든 성인 남성이 자연적 권리에 따라 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식민지가 커지면서, 거주지가 멀어지고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면,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임을 갖는 것이 더는 현실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모두 이웃처럼 가까이 살면서 공적인 일도 많지 않아 쉽게 모일 수 있었으나, 나중에는 각자의 대표를 뽑아 각자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하는 것이 더 편리해진다. 이 대표들은 자신을 선출해준 사람들의 이익을 따라야 하고, 만약 전체가 직접 회의에 참여했다면 내릴 결정과 같은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식민지가 계속 성장한다면, 더 많은 대표자가 필요하게 되고, 모든 지역이 고르게 대표될 수 있도록 거래별로 대표자를 추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대표자들이 별도의 특권층이 되지 않도록 선거를 자주 실시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통해 대표자들은 곧 일반 대중 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자신 역시 또다시 일반 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익에 더욱 충실해진다. 이렇게 이들을 정기적으로 교체함으로써, 공동체 전체가 더욱 단단하게 결속된다. 이것이야말로 무의미한 왕의 칭호가 아니라, 진정한 정부의 힘이요, 피치자의 행복의 원천이 된다.
<추천평>
"이것은 다시 한 번 전국의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독서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할 운명을 겪는다."
- Toh, Amazon 독자
"토마스 페인의 이 책이 없었다면 이후의 미국 독립 선언문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영국과 식민지 미국 사이에 불만과 적대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페인의 논쟁 이전에는 반란이 아닌 화해에 지배적인 정서가 우세했다. 하지만 이 책이 제기한 단순한 논리와 윤리적 추론은 식민지의 집단 양심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초기 미국 역사에 대한 필수 읽을 거리가 있다면 바로 이 책이다."
- Catbnee, Goodreads 독자
"단순한 노력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책의 독서는 통찰력을 줬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재미있었다. 열정적인 지혜, 신랄한 재치, 지적인 재능으로 가득 찬 이 유명한 책자가 영국으로부터의 미국 독립을 위한 구호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총명한 만큼 대담했다. 이 작품을 더 빨리 읽지 못한 것을 후회할 뿐이다. 미국 역사를 복습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 angella, Goodreads 독자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시기의 사상가, 언론인, 저술가, 정치혁명가로서 미국 독립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고, 조지 워싱턴 등 미국 초기의 정치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페인은 173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코르셋 장인이 됐다. 이후 교사, 담배업자, 하급 세무공무원 등으로 취업과 해직을 되풀이했다. 1772년에는 세무관료의 부패를 척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들의 보수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세무서에서 해고당하기도 했다. 1774년 페인은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만난 벤저민 프랭클린의 권유로 아메리카로 갔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매거진>에서 일하면서 미국 독립전쟁을 지지하는 여러 편의 팸플릿을 발표했다. 그중 1776년 1월에 발표돼 15만 부나 팔린 팸플릿 《상식》은 영국에 대한 아메리카의 자주적이고 완전한 독립을 주장한 것으로 6개월 뒤 <독립선언문>이 나오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독립 이후 잠시 정치에서 물러나 있던 페인은 1787년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1790년 버크가 프랑스혁명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자 이에 반박해 1791년과 1792년 두 차례에 걸쳐 《인권》을 발표했다. 프랑스혁명을 옹호하고 영국인들에게 공화국을 세울 것을 호소한 이 글로 인해 페인은 영국에서 반역자로 몰려 법익을 박탈당하고 가까스로 프랑스로 탈출했다. 이후 프랑스 국민공회 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혁명세력에 동참해 활동하다가, 루이 16세의 처형을 반대한 이유로 룩셈부르크 감옥에 투옥되지만 로베스피에르의 실각과 함께 석방되었다.
1802년 페인은 제퍼슨 대통령의 요청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너무도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졌던 그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질시를 받았다. 결국 페인은 과거 독립혁명의 영웅이 아니라 혐오스런 무신론자로 배척당하다가 1809년 빈곤과 고독 속에서 파란 많은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