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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과 그 주변의 군 병원, 회복 병영 등에선 때때로 5만 명이 넘는 부상자와 병상자들이 머물곤 합니다. 이곳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부상은 물론, 장티푸스와 설사 같은 각종 질병이 끊이지 않습니다. 많은 방문객조차 이곳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처참한 풍경에 넋을 잃고 말지요. 군 병원이라는 두 단어 안에는, 수많은 밤을 지새운 가족들의 걱정과 눈물,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이별의 기다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미국의 중부, 동부, 서부-어느 곳을 막론하고, 모든 주의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 뉴욕뿐만 아니라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서부와 북서부, 그리고 뉴잉글랜드 각 주에서도 수많은 청년들이 병상에 있습니다.
저는 지난 두 달여 동안 거의 매일 이들 병원을 찾아, 가장 도움이 절실한 이들과 임종을 앞둔 병상자들에게 영양과 위로를 전하는 자원 봉사 일을 해왔습니다. 이곳에서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많은 배움과 세심한 마음, 그리고 약간의 단호함도 필요합니다. 이 병원에 머무는 이들의 대부분은 미국의 젊은이로, 똑똑하고 자부심 넘치며, 따뜻한 마음과 강인한 체력을 가진 이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농부의 아들이고, 또 많은 이들은 도시의 기계공이나 노동자들이지요. 그리고, 이들 모두는 군인, 병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워싱턴 일대에 이토록 많은 군 병원과 회복 병영이 있다는 사실을, 북쪽 도시 사람들은 제대로 실감하지 못합니다. 이곳에는 두세 개, 열두 개가 아니라, 무려 쉰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병원이 있습니다. 어떤 병원은 환자 수용 규모가 천 명이 넘을 정도입니다. 지역 신문에서는 이들 병원 명단을 뉴욕, 필라델피아, 보스턴의 교회 명단만큼 길게 실을 정도이지요.
정부는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신속하고도 최선을 다해 대처하고자 늘 애쓰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나무로 지은 긴 1층 병동 막사들을 중심으로,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나 공공건물을 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입니다. 이 막사들은 도로를 따라 쭉 이어지며, 알파벳이나 번호로 병동을 구분합니다. 중앙 막사에는 깃대가 세워져 있고, 사무실과 의무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막사 한 채에는 60개 정도의 간이침대를 놓습니다. 급한 경우에는 침대를 더 촘촘하게 들여 많은 환자를 수용하기도 하고, 더 큰 막사를 쓰기도 합니다. 텐트도 있는데, 생각보다 쾌적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각 병동마다 병동장과 10명에서 12명당 간호사 한 명이 배치됩니다. 병동 외과의사가 두 병동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떤 병동에는 여성 간호사도 있습니다. 아모리 스퀘어 병동에는 훌륭한 여성 간호사들이 있으며, E병동의 간호사도 특히 뛰어납니다.
얼마 전까지는 워싱턴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인 특허청의 2층이 심하게 다친 병사들과 위독한 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세 개의 넓은 방에 배치된 수많은 병상,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운 병사들의 신음과 숨소리,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지요. 밤에는 특별히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찾아 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따스한 말 한마디, 작은 위로가 이곳에서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환자들 사이의 통로마다, 그리고 위쪽 갤러리와 대리석 바닥 위에 눈이 시릴 만큼 다양한 운명과 사연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결국 지금은 이곳 환자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특허청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이 수많은 병상자들 사이에는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노트북을 펼쳐 보아도 이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을 대표할 사례 하나를 고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저 한 가지, 이곳의 젊은 병사들에게서 만나는 솔직함과 용기는 제가 기대했던 그 이상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추천평>
"이 책은 월트 휘트먼의 가장 강력한 시 중 하나다. 휘트먼은 1862년부터 1864년까지 워싱턴 D.C.의 전쟁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그리고 그의 시는 절망적으로 부상을 입은 젊은 병사들을 돌본 경험을 회고하고 특히 감동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월트 휘트먼이 위대한 미국 시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이기도 했다는 강한 느낌으로 이 책을 마쳤다."
- Poll, Goodreads 독자
"월트 휘트먼이 남북전쟁에서 간호사로 자원봉사한 경험에 대한 훌륭한 기사와 편지 모음집이다. 휘트먼은 1861년에 시작된 전쟁에서 싸운 군인들의 잔인한 여파에 대해 정직과 연민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남북 전쟁에서 군인들의 고통과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군인의 인간적인 측면에 대한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예상대로 때로는 슬프고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고 휘트먼은 자신의 관점에서 전체 이야기를 훌륭하게 다루고 있다. 흥미롭고 깊이가 가득하다."
- Mitch, Goodreads 독자
"이 글을 읽으면 천사라는 한 단어만 떠오른다. 월트 휘트먼은 남북전쟁 당시 죽어가는 병사들의 침대 옆에 앉아 죽어가는 그들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들에게 돈과 과일을 주고 심지어 아이스크림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는 이 편지가 가족이 그들로부터 듣게 될 마지막 말이 될 것임을 알고 그들을 대신해 집으로 편지를 썼다. 이것은 조국을 위해 궁극적인 희생을 치른 젊은이들의 마지막 시간을 들려보는 가슴 아픈 시각이 돋보이는 글이다."
- nakafalaou, Goodreads 독자
미국의 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 월트 휘트먼은 1819년 5월 31일 미국 롱아일랜드의 헌팅턴타운 근교의 웨스트힐스에서 농부이자 목수였던 아버지와 퀘이커 교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 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휘트먼은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5∼6년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하고, 11세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법률 사무소, 병원, 인쇄소, 신문사 등에서 잡일을 하면서 영국 낭만주의 소설과 시, 고전문학, 성경 등에 심취했다. 그러다가 17세가 되던 1836년에 교사가 되었으며, 그 후 롱아일랜드에 있는 학교에서 5년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후, 저널리즘에 몸을 담아 뉴욕에서 활약했는데, 1838년에는 주간지 <롱아일랜더>를 창간했으며, 1842년에는 신문사 <뉴욕 오로라>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해에 그는 에머슨이 뉴욕에서 행한 “자연과 시인의 능력”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에머슨이 예언해 준 “미국의 시인”이 되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1842년 봄에 갑자기 편집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뉴욕 오로라>를 그만둔 후, <이브닝 태틀러>, <롱아일랜드 스타>,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과 같은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 자유 기고가, 편집인 등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다가, 마침내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848년에 휘트먼은 뉴올리언스에서 발행되는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의 편집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고 뉴올리언스로 떠난다. 이때 그는 여행을 통해 그는 미국의 광대함과 다양함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때 경험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폭 넓은 비전은 그의 시에 스며들어 그를 미국의 위대한 시인으로 발돋움하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휘트먼은 뉴욕으로 돌아온 후 신문사 <브루클린 프리맨>의 편집 일을 맡았다. 그가 36세 되던 1855년 7월 4일에 첫 시집인 ≪풀잎≫을 자비로 출간했다.
또한 휘트먼은 1862년에 남북전쟁에 참전했다 부상당한 동생 조지를 병문안하기 위해 워싱턴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군 병원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1865년에 출간된 시집 ≪북소리와 1875년에 출간된 ≪전쟁 회고록≫은 이때의 경험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1882년에는 그의 인생 초기의 생활, 남북전쟁 당시 간호사로서의 경험, 노년기의 일상생활, 그의 문학관 등을 담은 산문집인 ≪표본적인 나날들≫을 출간했다. 그리고 출판 및 판매 금지를 당한 덕에 오히려 사상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 ≪풀잎≫ 제6판과 ≪표본적인 나날들≫의 판매 수입으로, 그는 1884년에 뉴저지 캠던의 미클 가에 2층짜리 건물을 구입해 이 집에서 1892년 3월 26일 죽을 때까지 살았다.
휘트먼의 신념과 비전을 통해 나온 시가 미국 시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대에는 주로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뿐, 독자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미국 최대의 시인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고, 그의 시집 ≪풀잎≫은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