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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오익환, 김민웅, 김언호 (지은이)
- 출판사한길사
- 출판일2019-06-06
- 등록일2020-03-24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32 M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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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반민특위 발족 70년,『해방전후사의 인식』출간 40년 기념기획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린다”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발족 70년, <해방전후사의 인식> 출간 40년 기념기획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해방전후사, 즉 광복과 반민특위 발족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역사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문제작으로 1979년에 첫 권이 출간되었다. 당시 금기시되던 ‘해방전후사’를 정면에 다룸으로써 지식사회와 대중 모두에게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일제 말의 친일파 군상과 친일파 청산을 위해 출범하는 반민특위를 자세히 다루면서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 문제를 환기시킴으로써 단숨에 문제작이 되었고 이런 이유로 판금되었다.
지금 몇몇 정치인이 반민특위를 둘러싸고 왜곡된 발언을 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왜 발전하지 못하는가. 70년 전의 반민특위가 성공했다면, 그래서 친일세력이 청산되었다면 우리의 정치는 좀더 정의로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를 기획출간하게 되었다.
1979년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오익환의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는 반민특위의 성립과 해체 과정을 객관적이고도 자세하게 서술했다. 경희대학교 김민웅 교수의 '1949년 반민특위와 오늘'은 미국의 냉전정책과 친일세력의 관계를 분석하며 해방전후사의 맥락을 짚었다. 출판인 김언호의 '나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만들기 역사정신 체험하기'는 엄혹한 시대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기획하고 출간하면서 겪게 되는 ‘책의 사회사’를 생생하게 정리했다. 이 책은 오늘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어떤 역사의식·문제의식이 요구되는가를 묻고 담론한다. 친일세력 청산과 민족정신 바로 세우는 일이 여전히 중요한 문제의식임을 강조한다.
미국의 냉전정책: 독일 나치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부활 _ 김민웅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의 첫 글 '1949년 반민특위와 오늘'은 반민특위가 왜 실패했는지를 살핀다. 특히 미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한반도에 적용하는 냉전정책에 주목하는데, 이는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없던 이승만이 친일세력과 손잡기 위해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기존의 설명을 더 깊게 파고 들어간다.
저자는 우선 ‘반공’의 기원을 설명한다. 일본 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에는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전시 총동원체제의 기틀을 닦았는데,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중시해 전쟁을 반대한 좌파가 주요 표적이었다.
반공은 승전국 미국에게도 중요한 정책적 가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아시아에서 파시즘에 저항한 주요 세력은 좌파였다. 그렇다면 전후 이들이 정치구도의 재편에 주도권을 쥐게 될 텐데, 소련이 팽창하는 상황에서 이는 미국에게 악몽이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반공을 기치로 냉전정책을 새로 설계하는데, 이것이 바로 ‘역코스’(reverse course)다. 유럽에서는 나치 세력을, 아시아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히틀러의 대(對)러시아 전문가이자 정보국장이던 라인하르트 겔렌(Reinhard Gehlen)은 미국의 지원으로 서독의 정보국장이 된다.
일본의 미군정 방첩대 G-2 책임자는 맥아더의 측근인 찰스 윌러비(Charles Willoughby)로 그는 도쿄재판에서 특급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최정예 수하들이 처형되는 것을 막고 이들을 주요 정치세력으로 삼는다. _ 51~52쪽
일본의 경우 1950년경까지 좌파로 찍힌 1만 1,000여 명이 생업을 잃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이에 앞장선 일본 파시스트 군부세력은 자민당(自民黨)으로 집결한다.
이러한 상황이 해방공간 한국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반민특위가 제대로 활동하지도 못하고 해체된 건 단순히 이승만의 정치적 판단 때문이 아니다. 이는 미국의 ‘의도된 설계’ 탓이다. 나치 세력이 서독의 정치인이나 군인으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자민당으로 집결했듯, 한국의 친일세력도 해방 후 정치인, 경찰, 군인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더니 사후에는 ‘신’(神)으로 대접받는 경우가 좋은 예다. 이러한 자들이 민족사의 주류를 차지한 것이 오늘 우리의 비극이다. “반민특위가 국민여론을 분열시켰다”는 몇몇 정치인의 망발은 바로 그 비극의 연장선에 있다.
반민특위의 성립과 해체 _ 오익환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는 반민특위의 성립과 해체 과정을 객관적이면서도 자세하게 다룬다. 반민특위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관련 법안이 제정된다. 하지만 미군정의 반대로 공포되지 못해, 결국 1948년 제헌국회가 들어서고 나서야 제정, 공포된다.
미군정이 반민특위 설치를 반대한 이유는 명확하다. 미군은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하고 바로 다음 날 군정을 선포, 이후 3년여간 남한을 통치한다. 이때 미군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그대로 사용했고, 일본인 관리들을 그대로 중용했다. 이런 미군이 반민특위를 허가할 리 없었다.
제헌국회에서 반민특위 관련 법안이 제정되고, 대통령 이승만이 공포하지만, 반민특위는 채 1년도 유지되지 못하고 해체되고 만다. 약 10개월간의 활동 기간 중 총 682건을 다뤘으나 실제로 체형(體刑)이 선고된 자는 12명에 불과했다. 5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니 실제로 체형을 받은 자는 7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35년간 우리 민족의 정신과 삶을 유린한 친일파가 고작 7명이었단 말인가.
저자는 반민특위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전 과정을 다루며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이를 위해 각종 사료를 인용하며 반민특위 관련 법안이 만들어지기까지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반민특위 구성원들의 인적사항은 어떻게 되는지, 이승만이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발표한 담화문은 어떤 내용인지, 반민특위 공판은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자세히 다룬다.
오익환은 반민특위를 해체하게 된 직접적 계기로 반민특위 요원 암살음모와 반민특위 습격 사건을 집중적으로 고발한다. 전자는 경찰 내 친일세력이 직접 나서 반민특위 요원을 암살하려던 사건으로 핵심 공모자의 변심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경찰이 직접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후자는 유명한 6·6사건으로 역시 경찰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자료들을 압수한 일이다. 저자는 이 사건들의 전후와 배후를 자세히 서술해 반민특위에 대한 견제가 이승만정권 차원에서 얼마나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는지를 밝힌다.
경제인으로 일제에 부역한 화신 그룹 총수 박흥식, 체포당하는 순간까지 천황의 초상을 집에 걸어둔 황족 이기용, 변절한 최린·최남선·이광수,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반민특위 요원을 암살하려던 노덕술 등의 기소장과 심리 녹취록을 발췌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책 썼다고 잡아가고 책 읽었다고 잡아가던 시대 _ 김언호
한국 현대사에서 ‘반민특위’ 연구는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다. 친일세력이 청산되지 못하고 주류를 형성한 탓에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런 금기를 깨고 처음으로 반민특위의 존재와 그 역사를 공론화한 게 바로 1979년 10월 15일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었다. 12명의 연구자가 해방전후의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한 이 책은 당시 기준으로도 두꺼운 600여 쪽에 달했지만, 초판 5,000부는 서점에 입고되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독자들은 이미 해방전후사를 담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시대정신이었다.”
우리는 민족사의 전진을 위해, 이 시대와 숙명적으로 대결하는 자세로 이 시대의 의미를 추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가 해명됨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한 사회과학은 맥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_ 230쪽
하지만 책이 출판되고 열흘 정도 지난 10월 26일,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총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모든 출판물은 ‘군검열’을 받아야 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아직 출고되지 못한 450부를 압수당하기에 이른다. 이 책이 다시 독자들 앞에 나오기까지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저자는 당시 직접 검열 담당자들을 쫓아다니며 책의 의의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책 만드는 사람의 양심으로 ‘판금’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롯한 일련의 책들이 이처럼 부활하게 된 데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붕괴되는 1979년 10월부터 1980년 5월까지 지속된 ‘서울의 봄’이라는 혁명적인 분위기의 한 계절을 함께한 동시대인들의 연대가 있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짓눌렸던 국민의 자유에의 열망이 폭발했다. _ 236쪽
이후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89년까지 10년에 걸쳐 총 6권으로 완간된다. 47명의 학자가 참여해 61개의 주제로 집필했다. 해방 전에 태어난 제1세대 연구자들부터 그들에게 수학한 제2세대 연구자들까지 집단지성의 집필이 진행된다. 제3권부터는 특히 제2세대 연구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이처럼 젊은 연구자들의 출현은 해방전후사가 학계에서 새로운 연구과제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해전사’ 연구와 출간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심심치 않게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신문과 TV 뉴스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학생운동 등을 이유로 잡혀가는 대부분 대학생이 이 책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전사 세대’의 탄생이었다. “책 썼다고 잡아가고 책 읽었다고 잡아갔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이처럼 그 시대를 함께하는 수많은 연구자와 독자의 공동연구와 공동독서로 한 권의 역사적 명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었다.
여전히 살아 있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역사정신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여전히 살아 있다. <경향신문>은 2007년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저술’을 조사한 바 있는데,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제1위였다. 2016년 10월 <경향신문> 창간 70주년을 맞아 ‘1945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을 선정했는데, 이 조사에서도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제1위를 차지했다. 또한, 1989년 출판기자단이 ‘올해의 책’으로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 6권을 선정했다.
1979년 그 첫 권이 출간된 이래 전 6권으로 완간되는 현대사 연구서다. 우리 시대의 주요한 연구자 60명이 필진으로 참여한 이 기획은 해방 후 우리의 역사학과 사회과학계가 이룩해낸 일대 쾌거로 인정받고 있다. 1980년대 한국 현대사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총결산하고 1990년대에 전개될 한국 현대사 연구의 전망과 방향을 보여주는 분수령의 의미를 지닌다. _ 248쪽
2018년에는 <한겨레> 창간 30주년 특별기획으로 ‘1988년 이후 한국 사회의 집단지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을 조사했는데, 이때도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꼽혔다. “분단체제에서 식민사관과 반북·냉전교착에 찌든 국민의 현대사 인식을 뿌리째 뒤흔든 인식론적 전환이자 충격을 준 한 권의 책”으로 평가되었다.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책이 여전히 높게 평가받는 것은 우리 지성사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현실의 암울함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의 오늘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밝히고 비판한 역사적 상황에서 지난 40년간 얼마나 나아갔는가.
황대권 씨 간첩조작 사건은 32년 만에 재심이 진행되고 있는데, 재심재판 과정에서 검사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은 게 무슨 큰 죄가 되는 양 꼬치꼬치 심문하는가 하면 판사 역시 “그런 불온서적을 읽은 게 사실이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_ 259쪽
“반민특위가 국민여론을 분열시켰다”는 왜곡된 인식은 몇몇 정치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민특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떤 정파를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사회를 바로 세우는 우리의 당면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의 역사를 바로 알고 그 역사의 정신을 제대로 인식하는 일은 나라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목차
5 젊은이들에게 역사정신을
『해방전후사의 인식』 출간 40주년 기념기획을 펴내면서
1949년 반민특위와 오늘 김민웅
15 『총독의 소리』
19 일제 식민지 시대는 종언을 고했는가
23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충격과 그 맥락
33 민족의 자주적 권리를 좌절시킨 미군정
40 오익환의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
48 역코스와 미국의 냉전정책 그리고 친일세력의 재기
59 반민특위 논의가 절실한 오늘의 까닭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 오익환
69 반민특위는 역사적 소명작업
71 반민족행위처벌법의 발의
80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발족
85 들끓는 찬반여론
89 이승만과 반민법
93 이승만의 반민법 개정작전
109 국회의 자가당착
112 친일세력의 방해공작
118 반민특위 요원 암살음모
124 반민특위에 대한 습격: 6·6사건
139 반민특위의 와해
147 반민특위 재판의 실제
153 반민 공판의 준비
156 검거 제1호 박흥식
167 박흥식의 보석 파동
172 첫 심판대에 오른 황족
175 자칭 애국자 이종형
181 변절을 후회하는 최린
186 악질 고등경시 김태석
194 참회의 나날을 보낸 김연수
196 「나의 고백」 쓴 이광수
199 최남선의 자열서
211 수배 중에 활보하던 노덕술
215 부록
나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만들기 역사정신 체험하기 김언호
227 박정희 군부독재가 몰락하던 시대에
229 ‘해방의 민족사적 인식’
234 군검열을 통과하면서 재생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238 6년 만에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2권
240 정부가 역사를 쓰겠다고 나서다
243 출판인 17인 선언 “출판의 자유 없이 민주주의 없다”
247 10년 만에 완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 6권
251 “압수된 책 450권 돌려달라”
253 ‘인식’과 ‘재인식’의 충돌
257 “해방 이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259 아직도 판검사의 입에 오르내리는 ‘불온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