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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원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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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원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윤기정 
  • 출판사다온길 
  • 출판일20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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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

봄이다.
고양이가 양지쪽에서 연해 하품을 하고 늙은이 볕발을 쫓아다니며 허리춤을 훔척거리면서 이(蝨)사냥을 골몰히 하는 때가 닥쳐왔다. 젊은이들은 공연히 사지가 느른하고 마음이 까닭없이 군성거리는 시절이 찾아왔다. 밖에서는 마치 겨우내 꽝꽝 얼어 붙었던 시냇물이 확 풀려가지고 콸콸거리며 소리쳐 흐르듯이 뭇사람들의 와글와글하고 떠드는 소리, 몹시 시끄러운데 쨍쨍한 볕이 우유빛 유리창을 들이비쳐 진찰실 안은 유난히 밝다.
이 안에서 삼십이 될락 말락한 젊은 의사 P가 하루 진종일 눈, 코 뜰 새 없이 병자들한테 시달리고 나면 저녁때에는 마치 졸경을 치고난 사람처럼 머리가 핑핑 돌아가고 사지가 솜피듯 피는 것 같다. ‘이래서야 사람이 살 수가 있나. 돈도 소중하지만’ 세수를 하고나서 담배 한 개를 피워물고 앉으며 입버릇처럼 매일같이 하던 말을 또 되풀이 뇌까리곤 하였다.
그로 하여금 한때 운이 트여 한번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 보라고 재수가 좋은지? 남한테 얹혀있다가 비로소 작년 가을부터 처음으로 개업한 이래 원근의 환자들이 마치 조수때 물밀려들 듯이 몰려왔다.

하루에도 몇 백번인지 모르게 청진기를 귀에다 끼었다 뺏다하고 또는 앙가슴을 두드리는 둥 눈을 까뒤집는 둥 혓바닥을 들여다보는 둥 맥을 짚어보는 둥. 이렇게 정신없이 갈팡질팡 쉴새없이 허둥대다가 정한 시간보다도 한 시간이나 더 늦게야 겨우 사람이 빌라치면 그제야 숨을 좀 돌리고 정신을 가다듬께 되는 것이다.
이즈막에는 때때로 괴로운 생각이 들다가도 예금 통장에 잔고가 나날이 붓는 것을 대할 적에는 그 괴롭던 생각도 씻은 듯 부신 듯 어디로인지 사라지고 만다. 또는 밤이 될라치면 술을 마시고 때때로 색다른 계집을 품안에 안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직업의 권태와 낮에 피곤을 잊으며 한편으로는 남이 맛보지 못하는 느긋한 행복을 혼자만 느끼는 줄 여기고서 몸을 소승겨가며 끝없이 기뻐하며 내려왔다.
그래 다른데는 돈 한푼에 치를 부르르 떨었지만 술이나 계집등사에 들어서는 몇 십원쯤은 아까운 줄 모르고 퍽퍽 쓰는 버릇이 아주 그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된 지 벌서 여러 달 전이다.
--- “이십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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