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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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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김남천 
  • 출판사문학일독 
  • 출판일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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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눈 내리는 밤에 길 위에 나서면 어디 먼 곳에 얇다란 검정 망사나 우중충한 수풀에 가리어서 달이 우련히 떠 있으려니 하는 착각을 가지게 된다. 최군이 먼저 마당에 내려 서면서,

"아유 이 눈 보게, 어느 새에 한 치나 쌓였네."

하고 지껄이니까, 최군 옆에 같이 따라 나섰던 해중월이라는 기생이,

"눈 오시는 밤에 취해서 거리를 쏘다니는 것두 버릴 수 없는 흥취시죠."

하고 요릿집 사환 아이가 빌려주는 우산을 마다고 그냥 두루마기 바람으로 눈 속에 들어섰다. 그도 미상불 술이 얼큰하니 취한 모양이다. 기생이 마다고 한 우산은 정군이 받아서 펼쳐 들었다.

"김군도 눈을 보면 흥분하는 축인가."

그렇게 말하고는 뒤에 선 나를 뻐끔이 돌아보며 우산 밑으로 기어 들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창엽이라는 기생과 팔을 걸고 현관으로 나서던 참이라, 그를 떼어놓고 혼자서 눈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셋이서 우산 밑으로 머리를 틀어박는 것도 야속한 일이어서 우리는 우리대로 눈을 맞으며 설레는 눈 속에 서보리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산을 받은 것은 정군 한 사람뿐이 되었고, 최군과 나는 각각 기생을 하나씩 한 팔에다 끼고 눈을 맞으며 무산관이라는 술집을 나섰다. 또 한 번 취흥을 새롭게 불러본다고 송양관으로 자리를 옮겨놓는 길이었다. 송양관의 새로 지은 신관은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3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나를 친구들은 그리로 안내한다고 한다. 술로 하여 상기된 얼굴에 무수히 눈송이가 부딪쳐서 물이 되곤 하였다. 내게 의지하듯 매어달린 기생도 이마와 콧등을 간지럼 피우는 눈송이를 씻기 위하여 여러 번 두루마기 속에 넣었던 왼팔을 뽑았다. 거리에 나서면 행인도 없었으나 모두 침묵하고 걷는다. 이윽고 일행이 송양관의 정문을 들어설 때에도 둥그런 문등의 주위를 꿀벌떼처럼 눈송이가 설레 도는 것이 보이었다.
--- “오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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