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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상)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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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상)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김동인 지음 
  • 출판사온이퍼브 
  • 출판일201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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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작품은 김동인 삼국시대 역사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상권에서는 어린 시절 백제국의 재건 출발에서부터 신라 말기의 운명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하권은 궁예 왕권의 몰락에서 고려에 패한 견훤 맏아들 신검과의 마지막 대면을 멀리하고 읍소하며 결국 둘은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견훤은 자식복도, 자신이 세운 나라의 쇠망도 아들로 인해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이제는 고스란히 회한으로 남은 자신을 회개하고 운명으로 마지막 생을 마감했던 것이었다.

『자, 이 칼을 물려받아라. 이후 요행 일이 뜻대로 되는 날이라도 결코 신라 임금을 난군 중에 잃지 말아라. 네 눈앞에서 이 칼로 자진케 해라. 원한이 크다. 원한이 크면 보수도 크나니라. 나라와-생명과-음-.』
아버지가 다시 싸서 주는(원한 큰) 품칼을 견훤은 받아 몸에 간직하였다. 그런 뒤에 아버지에게서 물러나왔다.

이 임금 69살-홋 9살에 아버지 아자개(阿慈介) 의 슬하를 하직할 때에 하였던 두 가지의 커다란 맹세-하나는 이백년 전에 망한 백제를 자기의 손으로 재건할 것이요, 또 하나는 그때 수치와 원한을 머금고 낙화암에서백마강으로 몸을 던져 죽은 망국 삼천 궁녀의 원수를 갚을 것두 가지가 다 성취되고도 이미 8년이다. 인제 남은 일은 일껏 공들여 쌓은 탑을 잘 보존할 후계자를 선택(選擇)하는 일이었다.

고려의 개선군이 백제를 멸하고 돌아오는 길에 황산(黃山)까지 이른 때였다.
고려 군졸들은 들에 영(營)을 치고 임금과 고관들은 어떤 절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때 견훤왕은 고려왕의 특허로 처음으로 신검왕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웃칸 문이 열리고 초연히 들어오는 모양을 아버님 되는 견훤왕을 쳐다보지도 않고 한참을 그냥 머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아드님도 들어선 채 읍하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이윽고 아버님이 비로소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죄를 알겠느냐?』
아드님이 대답하였다. 힘없는 작은 대답이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목숨」「배따라기」「감자」「광염 소나타」「발가락이 닮았다」「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4년 첫 창작집『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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