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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염(狂炎)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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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염(狂炎)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김동인 
  • 출판사달시루 
  • 출판일201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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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전은 왜 읽어야 하는가◂nn학과 공부에 시달려서인지 요즘 학생들은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다. 성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2013년 문체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의 연평균 독서량은 32.3권이고,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2권이다. 통계만 보자면 참담할 정도다. 우리의 독서 현실이 이렇다 보니 문학, 특히 고전의 효용성이 지금도 지속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종언을 고한 바도 있었다. n고전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사라지지 않고 널리 인정받은 걸작들을 말한다. 고전은 개인에게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삶을 구제해 주는 역할을 했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되고, 올바른 가치관을 수립하는 데서도 큰 도움을 얻게 된다. 그래서 고전이란 보편성의 다른 이름과 마찬가지이고, 늘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고전을 후손들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셈이다. nn▸수록 작품들 소개◂nn〈광염(狂炎) 소나타〉는 작가가 추구한 예술관과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백성수는 작곡가로서의 영감을 얻기 위해 사회적 일탈 행위를 거침없이 해치운다. 서간체와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한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 설정이 사회 윤리와 충돌된다는 점에서 부정적 평가도 받고 있다.nn〈발가락이 닮았다〉는 자연과학적 사고의 바탕 위에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세밀하게 그린 작품으로 자연주의적 경향의 작품이다. 방탕한 생활로 생식 능력이 사라진 노총각 M과 아들을 출산한 아내, 그리고 의학적인 판단과 인간적 판단 사이에 갈등하는 의사가 주인공이다.nn〈붉은 산〉은 작가의 민족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비애와 중국인과의 민족 갈등을 그렸다. 밥버러지로 살던 ‘삵’이라는 인물이 민족 앞에 속죄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민족애를 고취하고 있다.nn▸책 속으로◂nn사람의 천재라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기회’가 없으면 영구히 안 나타나고 마는 일이 있는데, 그 ‘기회’란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천재’와 ‘범죄 본능’을 한꺼번에 끌어냈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하여야겠습니까 축복하여야겠습니까? -광염(狂炎) 소나타- nn검사를 하여서 정충이 살아 있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사멸하였다면 시재 제 아내와의 새에 생길 비극과 분노와 절망은 둘째 두고라도, 일생을 슬하에 혈육이 없이 보내고, 노후에 의탁할 곳을 가질 가능성조차 없는 절망의 지위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외다. -발가락이 닮았다- nn아아, 죽음에 임하여 그의 고국과 동포가 생각난 것이었다. 여는 힘 있게 감았던 눈을 고즈넉이 떴다. 그때에 삵의 눈도 번쩍 뜨였다. 그는 손을 들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부러진 그의 손은 들리지 않았다. -붉은 산-

저자소개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목숨」「배따라기」「감자」「광염 소나타」「발가락이 닮았다」「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4년 첫 창작집『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한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