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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와 눈 맞추기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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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와 눈 맞추기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신수현 (지은이) 
  • 출판사실천문학사 
  • 출판일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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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수현 시인의 표정에는 그늘 하나 없어 보이고 그의 웃음은 우주를 다 빨아들일 듯 여유롭다. 흔들림 없는 정신세계를 지니고서, 용광로처럼 들끓는 삶을 차분히 들여다보며 그윽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신수현의 시는 삶을 이중적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현실의 힘겨움을 희망의 온기로 바꾸는 전환의 화폭을 창조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끝없이 기다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작품 「눈」을 보자.

항상 생각해요
이마에, 뺨 위에 살짝 입 맞추고 갈까요
탱, 쥐었다 풀었다 눈치 보게 할까요
(중략)
당신 안에 출렁이며 머물렀지요 머문다는 것
발목 묻고 익어 가는 일입니다
몸 바꾸어
그 몸의
흐뭇한 살이 되는 일입니다
통통 살 오르는 날들을 지나
흩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중략)
다 덧없는 것만은 아니지요
스러지는 만남도 이렇듯 쌓이다 보면
당신에게 한번은 전부가 되고 싶습니다
만년설은 못 되더라도
-「눈」 부분

겨울날 가루눈 같은 자신의 존재는 미약하지만, 공중에서 이리저리 흩날리는 그것은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몸짓인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 나는 환상의 춤을 춘다. 그것은 제어할 수도 제어될 수도 없는 춤이다. 그러니 비록 상대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하여도 나의 사랑은 “다 덧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직 “한번은 전부가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시인은 자신의 춤을 춘다.

골목 끝 빌라의 외벽 담쟁이
이파리들 듬성듬성
구름 한 점 없어 더 멀어진 하늘도 버리고
폐지 더미 상자들이나 펼쳐 묶다가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마시는
눌러쓴 모자 귀밑머리 희끗한 사내들과
해바라기나 하고 있다
불콰한 얼굴 뒤로, 발바닥 아프도록
한 땀 한 땀 몸 던져 새겨진 길들 선명하다
업혀만 왔던 길 새삼 드러날까
등 뒤로 감추고 싶어지는 별과 별 사이만큼
가깝고도 먼 어제와 내일 사이
엉거주춤 매달려 있는 내가 보인다
남은 달력이 너무 얇은데
겨울을 날 외투는 충분히 따뜻할까
햇볕이 종종걸음으로 외벽을 넘어
목쉰 확성기를 틀며 생선을 파는 트럭
그림자를 지우며 간다
-「시월 담쟁이」 전문

듬성듬성한 이파리가 남아 있는 시월의 담쟁이 속 풍경에 “소주를 부어 마시는 희끗한 사내들”과 “목쉰 확성기를 틀며 생선을 파는 트럭”이 지나간다. 이 쓸쓸한 현실 세계 속에 어쩌면 피안(彼岸)은 없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눈은 사랑과 연민으로 충만하고, 지금 이만큼의 “햇볕” 하나로도 족하다고 토닥인다. 그리하여 지금 내가 발 붙인 이곳이 비록 평화롭지는 못하더라도, 아픔과 슬픔이 뒤엉킨 곳일지라도 한 떨기 수련(睡蓮) 같은 시는 끝내 피어오른다. 이 지난한 삶 속에서 기우뚱거리는 자신을 잡아 주는 “큰 손”이 있다고 믿는 신수현의 시는 삶을 바탕으로 쓰여진 한 편의 경전처럼 읽힌다.

방향을 잃고 갈피를 못 잡을 때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알 수 없는 손길을 느낀 적 있다 넘어지려는 찰나에 손잡아 주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문득 주위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하의 바깥바람 속에서도 가시덤불 속에서도 오므라들지 않게 하는 큰 손길, 티스푼이나 종이쪽에 나를 승선시켜 제 땅에 안착시키는
-「큰 손이 있는 풍경」 부분

저자소개

서울 출생. 1999년 《현대시학》에 시가,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목차

제1부

꽃무릇에 찍히다

구름 퍼즐

돌멩이는 물이 없어도 산다?

텅 텅 길이 내 몸에

관음(觀陰)

등꽃이 또 지고 있다

엄마

유배를 꿈꾸며

만화방창

노숙

겨울을 걷는 나무





봄 놓치다

나무들이 서로

파도

시범아파트엔 노인정이 없었다



제2부

구름 경전

넝쿨장미

떠나감에 대하여

겨울 화두(話頭)

낮 꿈

축문(祝文)

진화론을 읽고 있다

그림자 나비

고치 짓는 누에

비명(碑銘)들

수련이 핀다

봄비는 힘이 세다

다큐멘터리라고

개밥바라기와 눈 맞추기



제3부

큰 손이 있는 풍경

오월이면 나는 보랏빛이 된다?

悲 悲 悲

환상교향곡

문득 내 안에 연못이

사진 속의 웃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뫼제비꽃

별똥별, 움찔

화들짝, 활짝



나비를 좇다

방을 들키다

시월 담쟁이

은하철도보다 더 빨리

흘러내려요 봄이 자꾸



제4부

잠들어야만 샘솟는 아버지

제주도

밤섬을 위하여

겨울 숲에서

가을볕

내 몸 살아 있는

영춘화가 피었다

사랑

입추

첫눈

뿌리에 대하여

별똥사랑

운명 소나티네



이숭원 해설

시인의 말

한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