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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이태영
- 출판사아성민준
- 출판일2021-08-01
- 등록일2022-01-05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9 M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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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전직 킬러: 다시 총을 잡다'
공간장 발문
복수의 혼란스러운 충돌: 무엇이 그의 복수를 낳았나?
문명화를 겪은 거의 모든 사회는 복수를 금기로 여겨왔다. 피해자가 당한 일을 애석하게 생각할지라도, 피해자나 피해자 측근이 가해자나 가해자 측근을 상대로 복수를 하는 일만큼은 부적절하다고 명시적으로 밝혀온 것이 바로 우리 문명사회다.
성경을 비롯한 거의 모든 도덕책을 통해 우리는 복수를 지양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한 쪽 뺨을 맞았다면, 다른 한 쪽 뺨까지 내어주라는 말은 있어도, 상대의 뺨을 똑같이 때려주라는 말은 문명사회의 어떤 책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타인에게서 피해를 입을 경우, 일차적으로 복수를 꿈꾼다. 원수를 찾아가, 자신이나 자기 측근이 당한 일을 그대로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을 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이다.
이 같은 복수와 관련된 사건이 우리 사회에 적잖이 드러나곤 한다. 이때 복수를 한, 한때 피해자였던 사람은 결국, 우리 사회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공권력을 경유하지 않은 모든 형식의 사적 처벌을, 인간 사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처참한 일을 겪었을지라도, 우리 사회의 모든 연민이 복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몰려오고 있더라도, 바로 이 복수를 저지른 사람은 그의 인생을 망친 가해자처럼 범죄자가 되고 만다.
“아무리 분해도 참아야 한다. 참는 게 이기는 거다”란 말이나, “최고의 복수는 용서다”란 말에 익숙한 사회를 살아가는 필자에게, 이태영의 '전직 킬러: 다시 총을 잡다'는 복수의 본질, 또는 근원을 재고해볼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전직 킬러'는 길민에 대한 요승의 복수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전직 킬러'에 나타난 복수는 복잡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무려, 세 겹으로 짜여있다.
자신의 여동생 경은을 죽인 길민에 대한 요승의 복수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딸 희진을 죽인 요승에 대한 길민의 복수와 맞물려 있다. 여기에, 자신이 사랑한 여자를 죽인 요승에 대한 석화의 복수가 덧붙여지면서, '전직 킬러'는 여러 복수의 충돌 양상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복수의 복수(Plural Payback)인 셈이다.
'전직 킬러'는 필자에게 지속적으로 다음의 질문을 던진 소설이었다.
“우리에게는 과연 충분한 복수의 권리가 있는가?”
물론, 필자는 앞서 언급한 ‘충분한 복수의 권리를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컨대, 지난 해 출소한 한 아동 성범죄자는 복수를 당해 마땅한 사람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에게 피해를 입은 아이의 부모가 그에게 복수를 한다고 해도, 필자는 이 부모를 향해 어떤 비난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적 경우를 제외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과연 충분한 복수의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필자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복수를 실천하는 것과 복수심을 품는 것은 다르다. 복수심을 품는 것까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 필자는 당신이 누군가를 향한 복수심을 품고 있다면, 복수를 실천하기에 앞서 우선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에게는 과연 충분한 복수의 권리가 있는가?”
혹시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복수심을 낳은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사려 깊지 못한 어떤 행동은 아니었을까?
경은을 잃고, 길민을 향한 복수를 실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요승 앞에 끝내 나타난 건, 과거 자신이 저지른, 셀 수 없이 많은 죄악에 지나지 않았다.
경은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 원인을 길민이 생성했다면, 요승은 세상 하나뿐인 여동생의 죽음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지상 최대 악인인 줄 알았던 길민에게도 결국 ‘사정’이 있었고, 지상 최대 선인인 줄 알았던 요승은 알고 보니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인 악인 중의 악인이었다.
결과적으로, 필자도 성경이나 도덕책에 나올 법한 말로 글을 마무리하게 되어 유감스럽다. (앞서 언급한 어느 아동 성범죄자의 사건과 유사한 경우를 제외하고) 필자는 일차적으로, 지금 복수심을 품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는 과연 충분한 복수의 권리가 있는가?”
요승에게 충분한 복수의 권리가 없었듯,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에게도 어쩌면 이 복수의 권리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당신이나 당신 측근이 당한 피해 사실이 과거 당신이나 당신 측근의 가해 사실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유감스럽지만 당신에겐 충분한 복수의 권리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나 당신 측근이 당한 피해 사실이 과거 당신이나 당신 측근의 가해 사실과 전혀 무관한 것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필자는 당신이나 당신 측근의 복수를 조심스럽게 응원하고 싶다.
물론 당신이 이 사실을 기억하며, 굳이 복수를 실천하러 발걸음을 옮길 것이라 확신하면서 말이다. 요승과 길민의 복수가 결국 파멸로 끝났듯, 당신도 당신의 복수가 낳을 파멸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당신이 복수의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우선 두 개의 무덤을 파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는 당신의 적을 위한 것이겠지만, 다른 하나는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 조디 피코(Jodi Picoult), '19분'(Nineteen Minutes)
2021년 7월 22일
그날 이후 2655일째 되던 날
연구공간 '삐딱시선'
공간장 박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