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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가는 도중에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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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가는 도중에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바실리 악쇼노프 
  • 출판사무블출판사 
  • 출판일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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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찰나의 순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그 마법 같은 순간. 보통의 시작은 낯섬, 혹은 결여다. 스스로에 결핍된 육체적, 지적, 미적, 물질적인 무엇에 대한 갑작스런 발견, 혹은 ‘상대적 박탈감’일 수도 있다. 빼어난 외모나 타고난 힘, 출중한 재주, 잠깐의 대화로도 느껴지는 깊이 모를 정신세계와 지적인 축적 같은. 다르게는 극복할 수 없는 압도적 재력 차이와 드물게 ‘팜므 파탈’ 같은 성적 매력 앞에서도 쉽게 사람들은 공손해지고, 호기심과 경외감, 드물게는 ‘유사’ 사랑으로 발전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예상치를 벗어나는 대상을 접한 감정은 짧든 길든 격렬해지기 마련. 호기심, 호의, 존경, 경악, 질투, 불신, ... 어느 것이 먼저이든, 무엇으로 이어지든. 그 사랑의 깊이와 지속시간은 대부분 그 다음 문제다. 그 순간 견고한 방어기제가 사실상 전략적인 ‘거리두기’에 성공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인간사에 가장 특별한 일 중 하나다. 러시아 작가 바실리 악쇼노프의 ‘달로 가는 도중에’ 역시 비슷하다. 주인공 발레리 키르피첸코는 ‘상남자’다. 유배지로 유명한 사할린 벌목현장에서 일하는 트럭 운전사인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원과 군대, 수용소를 거쳐 현장 합숙소까지 거친 생활을 이어왔다. 그런 그가 여름 휴양지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스튜디어스 타냐에 반해 중간 기착지인 모스크바와 하바롭스크를 오가며 돈과 시간을 모두 써버리는 얘기다.
인상적인 것은 발레리의 감정선이다. 작가는 수사적이거나 감상적인 과장 없이, 담담한 대화처럼 전지적 관점으로 그를 들여다보지만 이렇다 할 기복이 없다. 몇 마디 타냐와의 가벼운 대화, 떼지 못한 시선 끝에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자태’로 승격되고, 그렇게 타냐는 발레리에게 들어온다.
유배생활 같은 벌목장에서 떠나 1년에 단 한 번, 평소라면 술, 도박 외엔 쓸 곳도 없는 돈을 탕진하러 가는 목적 없는 휴가. 매사에 거침없던 그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매양 비행기 표를 끊는다. 그녀와 우연히 마주쳐도 눈인사 이상 접근해 말을 걸 마음이 없다. 그저 양복을 사고 책을 읽고 공항과 모스크바 시내를 어슬렁거리고 그녀가 있을지 모를 같은 노선 비행기를 갈아타며 달뜬다.
휴가는 그것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하바롭스크와 모스크바를 오가며 여기가 어딘지 몇 시인지 감각을 잃을 정도가 되고, 태어나 이만큼 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느닷없이 울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처럼 멋진 휴가를 보냈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만큼 만족스럽다.
그렇게 다시 벌목현장으로 돌아오는 그에게 감정변화는 없다. 사할린에서 유즈니를 거쳐 하바롭스크와 모스크바까지 그간 비행기로 오간 거리를 계산하며, 갈 수 없는 저 달과의 거리(약 38만km)를 비교하면서. 그녀라는 ‘달’에 닿는 거리를 가늠한다. “그렇게 멀진 않은데. ... 아무것도 아니군.”
공항에서 멀찍이 타냐를 응시하며 생각한다. “트럭을 몰고 능선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능선에 올라가면 너무도 생각해야 될 일이 많아서 그녀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산허리까지 내려오게 되면 다시금 그녀 생각이 나리라. 그리고는 저녁 내내 그리고 밤새도록 그녀 생각을 하게 되리라. 다음 날 아침에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잠에서 깨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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