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출판사무블출판사
- 출판일2021-08-22
- 등록일2021-12-09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8 M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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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반 일리치의 인생은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너무나 끔찍했다.” (p41)
이반 일리치는 러시아 제정시대의 부패한 관료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지상 목표로 하는 야심찬 법관(판사)다. 그의 야심 탓인지, 본래 천성인지 소위 ‘상류사회’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입던 옷처럼 잘맞았다. 그는 쾌락과 정욕, 허영에 몸을 맡기면서도 업무적인 능력을 증명할 정도의 열정을 갖고 있었고, 사교계에서도 재미있고 재치 있는 인물로 통했다. 업무적인 권한과 사람들의 경외심을 함께 즐겼고, 자신이 응당 누려야할 자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치고 올라갔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 동안 유능하고 쾌활하고 싹싹하고 사교적인 남자, 하지만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일은 엄격하게 실행하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일은 높은 양반들이 그의 의무로 생각하는 일, 바로 그것이었다. 소년 시절에도, 어른이 된 뒤에도 그는 결코 남에게 아첨하는 일이 없었지만, 파리가 빛에 끌려들 듯 지체 높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그의 천성이었다.” (p42)
훌륭한 관리라는 평판 속에 승승장구하던 이반 일리치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당히 좋은 가문에 약간의 유산, 못생기지 않은 편인 외모를 갖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해 가정도 이룬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곧 서로에 대한 원망과 간섭으로 점철되고, 가정은 그저 더 많은 연봉과 더 큰 집을 강요하는 빚쟁이에 지나지 않는 곳이 된다. 하지만 뜻밖의 기회를 잡아 그는 만족스러운 연봉을 보장하는 새로운 직책을 따낸다. 더불어 그와 아내의 허영에 걸맞는 집을 찾아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간다.
“사실, 그 집의 실내장식은 그다지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이 많지 않으니까 독특한 멋은 부릴 수 없고, 따라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흉내 내는 데만 성공할 뿐이다. 그들의 집에는 어김없이 다마스크 천으로 만든 시트와 식탁보, 흑단 목재, 화분, 깔개, 둔탁한 빛을 내는 청동 제품 따위가 갖추어져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같은 계층의 사람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두는 것들이다. 이반 일리치의 집도 다른 사람들의 집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했지만, 그의 눈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집처럼 보였다.” (p60~61)
이반 일리치는 다시 만족스럽고 충실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도회를 열어 상류층 명사를 초대하고, 유력인사나 젋은이들의 방문을 받으며 과시하는 번지르르한 삶.
“그들은 그렇게 살았고, 이렇다 할 변화도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인생은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p66)
하지만 집 수리 중 사다리에서 삐끗하며 부딪힌 옆구리 통증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유명하다는 의사의 진료를 받고 꾸준히 약을 먹었지만 이제 고통은 업무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를 힘들게 하고 만다.
“하루하루가, 아니 순간순간이 그에게는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해주거나 동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누구의 이해나 동정도 받지 못한 채,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혼자 그렇게 살아야 했다.” (p79)
“주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이라는 엄숙하고 무서운 행위를 (마치 누군가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객실에 들어온 것처럼) 우발적이고 불쾌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사건 정도로 끌어내린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흉은 바로 그가 평생 동안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온 바로 그 예의범절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누구 하나 자기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99)
그는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며 무력감과 절망 속에 천천히 죽어간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심리가 그렇듯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등을 들쭉날쭉 오가며 살고 싶다는 욕망에 발버둥친다. 그럼에도 그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배변을 남의 손에 맡겨야 했고, 젊은 하인의 어깨에 다리를 올려놓지 않고서는 잠도 자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요즘 들어 그는 자신이 직접 꾸민 객실?그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바로 그 객실?에 자주 들어가보곤 했다. 그때 창문 모서리에 부딪힌 것 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객실을 위해 그는 목숨을 바친 셈이었다(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p91)
그가 이처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관심은 다른 데 쏠렸다. 그의 죽음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한 계산에 분주할 뿐, 시시각각 이반 일리치의 목을 조아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끝없는 고통에 무심했다. 그의 죽음을 앞두고도 가족과 사윗감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오페라 극장에 나서고, 그 젊음과 생명감에 대비되는 자신의 고통 속으로 그는 더 큰 절망에 빠진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가 병을 앓은 지 석 달이 지나자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그가 법관 자리에서 곧 물러날 것인가 어떤가에만 쏠리게 되었다. 그의 아내와 딸, 아들, 친지들, 의사들, 하인들도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민감하게 알아차린 사람은 바로 이반 일리치 자신이었다. 그가 언제쯤이면 세상을 떠나 그의 존재가 야기하는 불편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마침내 해방시켜주고, 그 자신도 고통에서 해방될 것인가가 다른 사람들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p93)
“자신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력함, 끔찍한 고독, 인간의 잔인함, 신의 잔인함 그리고 신의 부재를 한탄하며 흐느껴 울었다. “주여,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왜 나를 이 세상으로 데려왔습니까?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이토록 괴롭히십니까?””(p115)
“상상 속에서 그는 즐거웠던 인생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즐거웠던 인생의 좋았던 순간들 가운데 어떤 것도 이제 와서는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즐겁거나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몇몇 기억들을 제외하고는…….” (p116)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났건만, 그 모든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지겨워질 뿐이었다.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은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죽음뿐이야.’”(p117~118)
““그게 우리 탓인가요?” 리사가 어머니한테 말했다. “꼭 우리 탓인 것 같잖아요! 아빠가 가엾긴 하지만, 왜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하죠?” (p124)
이반 일리치는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후회와 상념, 원망과 분노에 빠진다. 그리고 체념과 화해, 용서로 승화되다 다시 분노 속으로 내동댕이 쳐지기를 반복한다. 드디어는 죽음에 대해 묻고 스스로 답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전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던 일, 즉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결국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지위 높은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과 맞서 싸우려고 애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런 노력은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한 것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가벼운 충동을 느껴도 당장에 억눌러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미미한 노력과 가벼운 충동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직무도, 생활도, 가족에 대한 약속도, 사교상의 관계는 물론 업무상의 관계도 모두 가짜였을지 모른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지만, 자기가 변호하고 있는 대상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불현듯 깨달았다. 변호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반듯이 누운 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침에 먼저 하인을 보았고, 다음에는 아내를 보았으며, 다음에는 딸을 보았고, 그다음에는 의사를 보았다.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운 진실을 뒷받침해주었다. 그것들 속에서 이반 일리치는 자기 자신, 즉 그의 인생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가짜이며, 삶과 죽음을 덮어버린 무섭고도 거대한 기만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러한 자각은 육체적 고통을 열 배나 가중시켰다. 그는 신음하며 마구 뒹굴었고, 숨이 막혀서 옷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아내와 딸과 의사를 증오했다.” (p125~126)
마지막 사흘간 계속된 고통, 그 끝에 그는 깨닫는다. 그의 여윈 손에 입맞추며 기도하는 막내아들을 보며 구원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톨스토이가 58세(1886년)에 발표한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대작들 대비 짧지만 대표작 목록에 반드시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혁명 전 러시아의 부패한 사회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장 강력한 비판이 담겼다는 평가가 많다.
해설에서 작가 이문열은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이 캐릭터, 스토리, 진행 모두 사실상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매우 흡사하다고 지적하면서도 두 작품 모두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작가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문학의 양대 거봉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신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다. 거기다가 80세의 고령을 누리면서 남긴 문화적 유산과 일화도 많아 그를 짧게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톨스토이에 관해 알고 싶으면 역시 시간을 따로 내기를 권하고 싶다”고 덧붙인다. (p134)
☞ 메멘토 모리의 훌륭한 전통 안에 자리 잡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휘스트 카드놀이와 저녁 파티보다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의 저자, 인생학교 설립자)
☞ 톨스토이의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가장 완벽하며 또한 가장 정교하다. - 블라지미르 나보코프 (『롤리타』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