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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정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 죽음의 미학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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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정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 죽음의 미학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스티븐 크레인 
  • 출판사무블출판사 
  • 출판일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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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만 철저하게 무관심할 뿐인 자연의 여신 앞에서
―장경렬 서울대 명예교수, 스티븐 크레인의 ?구명정?이 말해 주는 것

만 29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생애를 보냈지만,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 1871.11.1.~1900.6.5.)은 미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장?단편소설과 시를 창작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일찍이 윌리엄 포크너는 마크 트웨인을 현대 미국문학의 할아버지라고 한다면 크레인은 아버지라고 말한 바 있거니와, 바로 이 말에서 우리는 크레인의 문학사적 존재 의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규적인 학교 교육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크레인은 1891년 6월 만 20세가 되기 전의 나이에 대학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신문 기자와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1893년 장편소설 ??거리의 소녀 매기 Maggie: A Girl of the Streets??를 발표했는데, 비록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작품은 오늘날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효시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어서 1895년 또 한 편의 장편 소설 ??붉은 무공 훈장 The Red Badge of Courage??을 발표함으로써, 크레인은 대서양 양안―즉, 미국과 영국―에서 주목받는 저명한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처럼 젊은 나이에 저명한 작가가 된 크레인은 1896년 12월말 한 신문사의 요청에 따라 그 무렵 스페인의 압제에 항거하여 진행되고 있던 쿠바 독립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떠난다. 쿠바에 잠입할 목적으로 그는 12월 31일 저녁 선원 자격으로 플로리다의 잭슨빌에서 출항하는 증기선 커머도어(Commodore)에 승선한다. 전쟁 물자 및 쿠바 독립군 자원자를 싣고 출항한 이 배는 항구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모래톱에 얹히고 만다. 모래톱에서 끌어내어 물에 띄우려고 하는 가운데 배는 부분적으로 파손을 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틀 후에 마침내 침몰하고 만다. 배에 있던 모든 구명정이 동원되었으며, 크레인은 다른 세 사람과 함께 작은 구명정에 오른다. 파도와 힘겨운 싸움을 하던 네 사람을 태운 채 대략 30여 시간 동안 바다에 떠 있던 이 구명정은 마침내 데이터나 비치의 해안 가까이(약 800미터 전방)에 이르러 파도에 뒤집히고 만다. 마지막 사투 끝에 네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은 살아남고 한 사람은 죽음에 이른다.
크레인은 이때의 경험을 기록하여 1897년 1월 6일 ?스티븐 크레인 자신의 이야기 “Stephen Crane's Own Story”?라는 제목으로 신문사에 보낸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후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단편소설 ?구명정 “The Open Boat”?을 창작한 다음 이를 ??스크리브너즈 매거진 Scribner's Magazine??에 발표한다. 크레인의 단편소설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위기에 직면하여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느끼는 진정한 동지애와 신뢰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이 소설은 자연이란 인간에게 잔인하지도 자비롭지도 않으며, 그를 배반하거나 그의 앞에서 현자인 척하지도 않은 채 다만 무관심할 존재라는 깨달음으로 독자를 이끌기도 한다. 물론 자그마한 구명정에 몸을 싣고 있는 네 사람은 때때로 절망하기도 하고 때때로 자연의 여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힘을 합하여 모든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독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자연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인내력과 잠재력이 얼마나 무한한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신문사 특파원은 크레인 자신의 소설적 형상화로 추정되며, 기관사와 함께 구명정의 노를 젓는 일을 맡아 한다. 그는 또한 많이 생각하고 깊이 느끼는 그런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신문사 특파원이라는 직업의 영향으로 그는 인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지만, 배 안에서 싹튼 동지애를 감지하고 이로 인해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일깨워나가게 된다. 구명정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낸 고난의 시간이 그에게 “생애 최고”의 경험으로 이해됨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또한 여러 번 자연에 대한 원망과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자연이란 인간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한 존재임을 생생하게 깨닫는다.
증기선 커머도어가 침몰할 때 부상을 당한 선장은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로,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신중하고 주의 깊은 그에게 절대적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보인다. 이야기 속 대화의 분위기로 보아 그는 배에 함께 있는 다른 세 사람보다 나이와 경륜이 한결 높은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나머지 세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또 배의 항로를 결정하기도 한다. 비록 배의 안전을 위해 육체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없지만, 그는 결코 잠에 빠져들지 않은 채 항상 배의 안위에 주의를 기울인다.
기관사인 빌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바의 일을 끈기 있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다. 커머도어가 침몰하기 전 기관실에서 이중 당직 근무를 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그는 누구보다도 피로에 지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인 노 젓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묵묵히 주어진 바의 일에 충실했지만, 그는 해안에 거의 다 이르러 죽음의 길을 걷는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리사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소설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면에서 볼 때 ‘어린아이답다(childish)’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항상 모든 일이 밝은 쪽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런 생각을 수다스럽게 입 밖으로 표현한다. 모든 사람들이 위기감에 젖어 긴장해 있지만 그런 순간 엉뚱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파이에 대해 생각할 정도로 현실 감각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배 안으로 들이닥치는 바닷물을 퍼내는 일이다.
어찌 보면, 위의 네 사람은 서로 다른 개성의 소유자로,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험난한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소설은 단순한 모험담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아울러,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을 냉정하고 절제된 필체로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빌리의 죽음을 통해 인간사란 결코 교과서적인 해답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사실 광포한 바다로 대표되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대결을 다룬 이 소설에는 두드러진 플롯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극적인 반전을 통해 읽는 사람들을 특별히 긴장케 하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문학적 비유와 상징 및 생생한 정황 묘사를 통해 이야기의 생동감과 현장감을 잘 살리고 있다. 아울러,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자연과의 대결 속에서 절망에 빠져들기도 하고 희망을 갖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깊고도 뛰어난 문학적 호소력은 결코 소홀히 여겨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자는 이 소설을 해양 전도와 온갖 해양학 표본이 있는 서울대학교 해양학 실험실에서 번역을 시작했으며 또 그곳에서 번역을 마쳤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건물 개축 공사로 인해 잠시 연구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자연대학 교수 한 분의 배려로 해양학 실험실 가운데 하나를 연구실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 도중 미국으로 건너가 태평양 연안에서 얼마 동안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때 역자는 자주 들르던 바닷가 어느 주점의 발코니에서 파도와 갈매기와 펠리컨에 우두커니 눈길을 주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이 소설의 번역을 계속하기도 했다. 우연이긴 했지만, 이처럼 역자는 광포한 바다와 인간 사이의 싸움을 다룬 이 소설에 대한 번역을 바다와 깊은 관계가 있는 곳 또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진행했다. 해양학 실험실의 분위기와 태평양 연안의 바다는 이 소설을 번역하는 역자에게 실로 각별한 감흥을 불러일으켰으니, 번역을 하는 동안 내내 역자는 소설 속의 정경이 시시각각으로 현재화되어 역자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끝으로 제목 번역과 관련하여 한 마디 하는 것으로 짤막한 소개의 글을 마치기로 한다. 이는 너무도 유명한 소설이기에 작품 자체에 대한 번역이 시도된 바도 있지만 미국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제목만 따로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된 적도 여러 번 있다. 이를 검토해 보면, 이 소설의 제목은 ‘난파선’이나 ‘무갑판선’으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고, 또는 ‘구명선’으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오픈 보트(the open boat)’란 갑판도 없고 햇빛이나 비바람을 피할 보호막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배, 그러니까 아무 설비도 없는 일종의 거룻배를 말한다. 물론 소설 속의 ‘오픈 보트’는 배가 조난을 당했을 때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작은 배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난파선’이라는 번역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인명 구조를 위한 작은 배 자체가 난파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무갑판선’이라는 번역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동시에 그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구명선’이 가장 적합한 번역일 수 있겠다. 하지만, ‘구명선’의 ‘선’(船)은 배를 지칭하는 일반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아주 작은 배의 느낌을 전하기에는 이 역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구명정’으로 번역해 보았는데, ‘구명정’의 ‘정’(艇)은 ‘작은 거룻배’를 뜻한다는 점에서 원래 제목의 의미를 가장 잘 전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배에 설치된 구명정들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구명정과는 느낌이 다른 것일 수 있다. 이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묘안이 없어 그냥 ‘구명정’으로 옮기기로 한다. 보다 더 적절한 우리말 번역이 있다면 역자에게 깨우침을 주기를 독자 여러분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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