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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의 편의점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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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의 편의점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박희숙 (지은이) 
  • 출판사문학세계사 
  • 출판일202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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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제된 서정, 은유의 시학
인간을 향한 곡진하고 절절한 사랑과 연민


박희숙의 시는 섬세하고 정제된 서정에 분방하고 발랄한 언어의 옷을 입히고 날개를 달아 낯설지만 빠져들게 하는 세계로 이끄는 매력을 발산한다. 이 낯설게 하기의 안팎에는 은유 기법이 은밀하게 개입되고 있으며, 언어가 언어를 부르는 연상의 묘미가 다채로운 양상으로 변주된다. 신선하거나 기발한 발상과 상상력이 받들고 있는 그의 시는 이미지의 비약이나 전이 때문에 때로는 문맥이 까다로워지고 난해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첨예한 감성과 언어 감각의 결과 무늬들이 시적 개성을 그 뉘앙스만큼 강화해 준다. 시인은 어떤 사물에든 빈번하게 인격을 부여한다. 조우하는 사물들을 사람처럼 가까이 끌어당겨 교감하면서 거의 어김없이 화자의 감정을 이입한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투영하거나 투사해 자아화된 세계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인간을 향해 열리는 마음을 담은 시에는 한결 곡진曲盡하고 절절한 사랑과 연민憐憫이 스미고 번진다. 또한 토속적인 서정과 과거 지향적인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편들에는 회귀의 정서가 두드러진다.
시인은 어떤 사물에든 인격을 부여해 사람같이 가까이 끌어당기며 은밀하게 교감한다. 시인이 마주치는 사물에는 빈번히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다. 벚나무를 향해서도, 장미를 향해서도 시인은 그 대상을 나무나 꽃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서정적 자아가 개입되면서 내면을 투영하거나 투사해 다분히 자아화(주관화)된 세계(대상)를 떠올린다.

시인의 겨우살이를 했던 심정이 벚나무에 투사돼 “세한의 고비마다 / 눈 뜨고 못 볼 일 저 혼자 받아내느라 / 할 말을 잃은”(「풍등」) 것으로 들여다보며, 벚꽃이 활짝 피는 모습도 “봄바람에 봇물처럼 말문 터졌다”(같은 시)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묘사한다. 더구나 벚꽃의 개화開花를 말문을 터트리는 것만으로도 보지 않는다.

천만 겹 날개 돋은 연분홍 은어들
풍등, 풍등 날아오르는
사월
벚꽃 그늘에 앉으면 무거운 생각들도
날아오르겠다

―「풍등」 부분

시인은 거의 모든 사물을 사람의 반열로 끌어당겨 바라보고 들여다보는 이면裏面에는 따뜻한 마음이 자리매김해 있다. “늦장마 빗속을 헤치고 / 굴뚝새 한 마리 집안으로 날아들어 / 거실이 순간 탱탱해졌다”(「굴뚝새를 부탁하다」)는 구절에서 읽게 되듯, 새 한 마리가 비를 피해 거실로 날아드니 순간 거실이 탱탱해졌다는 생각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 새는 무리를 이탈離脫한 어린 새이며, 비를 피해 숨을 곳(굴뚝)을 찾다가 “숨을 만한 굴뚝은 보이지 않고 / 사방이 벽, / 천지가 낭떠러지”(같은 시) 같은 거실로 날아들게 되지 않았는가. 이 정황은 굴뚝새로서는 어려움을 피하려다 더 나쁜 상황에 갇힐 수밖에 없는 벽과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 게 아닌가. 시인은 바로 그 점에 연민을 끼얹으며,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일은 “창문을 / 열어 두는 일”이고,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모과나무에게 / 어린 굴뚝새를 부탁하는 일”(같은 시)라고 따뜻한 마음을 열어 보인다. 이 같은 마음은 식탁 위에 놓인 ‘사과’를 향해서도 같은 빛깔로 투사된다.

사과는 사과를 좋아해
한밤중 사과는 오도카니 깨어 있어
사과는 사과를 불러 날밤을 새우지
목마른 사과는 자주 나를 지나쳐 버리기도 해
오늘의 사과는 둥근 식탁 위에 있어
껍질을 벗길 때, 사과는
칼을 보고 기겁하다가 기절할 뻔했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심장이 쪼개질 뻔했지

―「사과」 부분

이 시에서 시인은 사과와 사과의 관계, 사과와 화자(사람)와의 관계를 들여다보면서 그 관계를 사람의 문제로 환치換置한다. 사과를 향해 사과(잘못을 빔)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사과는 좋아하는 대상(사과)을 목말라 하며 날밤을 새우지만 화자가 먹기 위해 껍질을 벗기는 칼을 보고 기겁하다가 기절할 뻔했다고 보는 마음자리 또한 이 시인답다.

식탁 위의 사과가 자주 화자를 지나치려 했다든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심장이 쪼개질 뻔했지”라는 대목에는 서정적 자아의 순수한 감정이 오롯이 이입돼 있다. 뒤집어서 보면, 화자는 사과를 자주 먹고 싶어 하고 그 속살을 좋아한다. 사과와 화자의 관계는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심장”이 쪼개지지 않는 유보留保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시인의 인간을 향한 마음은 더 곡진曲盡하고 절절하다. 어떤 빛깔을 띠든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보다 사랑과 연민을, 때로는 애증愛憎을 한결 짙게 풍긴다. 「당신, 미쳤어요?」 에서처럼 일에만 골몰하며 무심하기만 한 사람에게 카톡 문자를 보내도 대답이 없자 앙탈한다. “밥때도 모르고 일에 파묻혀 있는가? / 너무 미쳐 탈 / 때때로 기대에 못 미쳐”서다. 하지만 “외출 중 우리, 미치다와 마치다 사이 / 어디쯤 걸어가고 있는 걸까?”라고 ‘함께, 그러나 따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삶을 반어법反語法으로 떠올리며, 그 ‘당신’과 이별의 아픔을 짙게 절규하듯 토로한다.

샐비어가 왜 붉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얘진 시간이 커튼처럼 너울거려요
그럴 줄 알았으면 끄트머리에
진주 방울이라도 몇 개 달아 둘 걸 그랬어요
당신 목소리 꺼 두었는데
깨꽃에서 뎅그덩뎅그덩 종소리가 나요
하릴없이 나는, 붉고 흰 종소리를
뗐다 붙였다 해요
깨꽃의 반은 붉고 반은 이울어
발 없는 내가 물색없이 절룩거리면
당신 무릎도 흔들리는 종지같이 될까 봐
있는 힘 다해 이별을 끌어안아요
깨를 털듯 당신을 툭툭 털어 버리기 위해
어제도 그제도
당신 길이만큼 샐비어 꽃밭 늘였다는 걸
아실지 모르겠지만요

―「샐비어 붉은 저녁」 부분


깨꽃과 샐비어를 매개媒介로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통해 마음의 음영을 떠올리는 이 시는 샐비어의 붉은빛과 하얀 시간을 교차시키면서 내면 풍경을 곡진하게 떠올린다. 샐비어가 왜 붉었는지 모르겠다지만, 하얘진 시간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느끼게 되고, 진주 방울을 달지 않았으며 ‘당신’ 목소리를 꺼 두었는데도 깨꽃에서 붉거나 흰 종소리(방울 소리가 아닌)를 듣게 되는 환청幻聽과 환상을 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고양이처럼 웅크린
새벽 두 시의 편의점

건성으로 켜 놓은 형광등 아래
메마른 눈꺼풀 견디는 미생이
두 시에서 네 시 모퉁이를 몽상인 듯
건너고 있어요
벽면 차지한 도시락 종류만큼
두근거리는 모서리, 바코드를 읽는 동안
초침이 척척 등뼈를 밟으며 지나가요
<중략>
출입문에 눈 디밀어 보는 회색 고양이가
저 닮은 눈동자에 화들짝 놀라는
새벽 네 시
한길 건너에는 편의점이 있고
새벽은 구부러진 골목을 돌아 천천히 도착해요
당신의 미명처럼 말이에요

―「두 시부터 네 시 사이」 부분

시인은 밤낮이 다르지 않게 가동되는 편의점의 새벽 두 시부터 네 시 사이의 풍경에 천착穿鑿한다. 초점은 고양이처럼 웅크린 상점 안의 신분이 불안정한 날품팔이(미생未生)에 맞춰져 있다. 웅크린 편의점의 형광등은 건성으로 켜져 있고, 일하는 사람도 그 모퉁이에서 졸음을 견디며 몽상夢想인듯 미명未明으로 다가간다.

시는 더 나은 삶과 그런 세계를 향한 꿈꾸기의 소산이며, 현실적인 삶과 맞물린 언어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변용하는 언어 예술이다. 그 세계로 나아가는 길은 무명無明과 비의秘義 너머로 트여 있는지도 모르며, 이미 마련돼 있는 왕도王道도 없다. 박희숙은 여우와도 같은 시에 사로잡혀 안달이 난 시인이며, 새벽의 찔레 향이나 달밤의 서늘한 물내에 민감한 바와 같이 ‘여우’(시)가 은밀하게 품고 있는 ‘진주’(시세계)를 찾아내고 더 빛나게 할 재능과 끼를 지닌 시인이라는 느낌을 안겨 준다.

저자소개

시인 박희숙은 경북 경산 출생이다. 2017년 《시인시대》로 등단했다. 현재 대구문인협회 회원이며 2021년 대구문화재단 경력 예술인 활동 지원 수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목차

1 네가 내게로 와서



장미아파트 ―――― 10

풍등 ―――― 11

다시, 봄 ―――― 12

굴뚝새를 부탁하다 ―――― 14

해안선 ―――― 16

사과 ―――― 18

샐비어 붉은 저녁 ―――― 20

살구나무 아래 ―――― 22

찔레꽃 편지 ―――― 24

수밀도 ―――― 26

앵무새 모시기 ―――― 28

시詩 ―――― 30

어린 우체국 ―――― 31

정인이 생각 ―――― 32

당신, 미쳤어요? ―――― 34



2 무엇을 빠뜨리고 온 것 같아



새몯안 이야기 ―――― 38

숨 ―――― 40

가면놀이―――― 42

구두 ―――― 44

주머니 속 그림자는 어디로 갔을까? ―――― 46

입이 없는 너는 ―――― 48

바람의 기억 ―――― 49

도마 ―――― 50

나비의 비문 ―――― 52

울음의 방식 ―――― 54

목백일홍 ―――― 56

소중한 것들 ―――― 57

개쉬땅 ―――― 58

노각 ―――― 60

누수 ―――― 61



3 종점은 가장 야만적인 꽃밭



두 시부터 네 시 사이 ―――― 64

망초꽃 피는 종점 ―――― 66

목련나무 근처 ―――― 68

폭우의 등 ―――― 70

신들의 정원 ―――― 72

공중은 구름이 한물이다 ―――― 74

시래기와 손잡다 ―――― 76

허수 일가 ―――― 78

간이역 ―――― 80

독의 솔가率家 ―――― 82

허수아비 ―――― 84

옥탑 풍경 ―――― 85

마리골드를 위하여 ―――― 86

홍시 ―――― 87

발톱 내미는 여자 ―――― 88



4 나무들도 태양을 낳으려고



춤추는 계단 ―――― 92

꿈꾸는 돌 ―――― 94

설화舌禍 ―――― 95

겨울은 그예 섬망을 앓았다 ―――― 96

섣달그믐께 ―――― 98

별꽃 위에는 언제 별이 내리나요? ―――― 100

그녀의 초상 ―――― 102

유령의 시간 ―――― 104

고구마가 익어가는 동안 ―――― 105

은행을 털다 ―――― 106

모퉁이 ―――― 107

석양 ―――― 108

그 숲에서 서성거리다 ―――― 109

폭설 ―――― 110

막차를 놓치고 ―――― 112



┃해설┃이태수 · 정제된 서정, 은유의 시학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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