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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꺼이 남을 위해 울어요 2 (완결)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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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꺼이 남을 위해 울어요 2 (완결)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아호 
  • 출판사젤리빈 
  • 출판일202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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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리 보기>
삭막한 폐허 같은 곳이었다. 무너져가는 집에도 사람이 살았다. 이상하리만치 햇빛이 비켜간 이곳에는 낮은 숫자를 몸에 새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신은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의 몸에 숫자를 새겨 넣었다. 그 사람의 근본적인 착함과 나쁨을 구분 짓는 숫자. 그 절대적인 수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몸에 새겨진 숫자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퀴퀴한 냄새와 불쾌한 쉰내가 풍겼다. 이 마을을 그런 마을이었다. 숫자가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빛마저 이곳을 피해서 가는지 대낮인데도 마을은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악한 마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기에 위험한 그들은 한곳으로 모여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다. 나라에서는 끊임없이 그들의 교화를 시도하고 봉사자를 보낸다. 신전에서 온 봉사자들이 멀리서부터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며 시끄러운 마차를 끌고 당도했다. 브리트니 또한 그들의 안온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허름한 집을 나섰다.
기운차고 건강한 말이 끄는 하얀 마차가 줄을 지어 마을 입구에 정차했다. 사람들은 양옆으로 갈라져 마차 안의 이들을 반겼다. 이미 몇 번이고 만났기 때문에 재회의 기쁨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드디어 마부가 한 손으로 마차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사제가 걸어 나왔다. 이런 냄새 나는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고귀한 자태였다. 아직 어려 키가 작은 브리트니는 마차에서 사제가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환호로 누군가 내렸다는 것을 짐작했다.
"신도님!"
"미카엘!"
"로라!"
이름이 막 불려도 사제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뒤로 다른 사제들이 발맞추어 따랐다. 지나치게 하얀 옷은 이곳에서 금방 때 묻게 되겠지만 그들은 그런 것쯤은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듯 사람들이 마련한 길을 따라 걸으며 미소와 손 인사를 보였다.
브리트니는 사제들을 이쯤 본 후 사람 틈새를 빠져나왔다. 아이의 걸음은 어른보다는 뒤처지기 마련이라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곱슬곱슬한 갈색의 단발머리가 뛰어가는 내내 흔들렸다.
서둘러 움직여도 사람들은 언제나 브리트니보다 빨랐다. 사제들이 자리를 잡고 빵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어느새 줄이 길게 늘어졌다. 브리트니는 발 빠르게 움직였기에 꽤나 초반에 줄을 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에 감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깊게 허리를 숙이며 존경을 표했다. 인자한 미소를 짓는 사제들은 그들을 하나하나 응대하며 축복의 말을 건네주었다. 브리트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을 깨끗이 먹고 신의 앞으로 나가면 아무리 더러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브리트니는 줄줄 외웠던 말을 술술 불었다.
"저에게 내려주신 말씀을 믿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뒤돌아 브리트니는 힘껏 달렸다. 집까지 가는 길은 꽤 먼 길이다. 사람들이 한곳에 몰려 있기에 브리트니가 뛰어가는 길에는 사람이라는 장애물이 없었다. 널브러진 사물은 많았지만 그건 부딪치면 다시 세워두면 될 물건들이기에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집에는 아픈 동생이 홀로 누워있다. 온 가족들이 빵을 얻기 위해 사제들의 앞으로 갔기 때문이다. 브리트니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동생의 손에 빵을 쥐여주고 서둘러 다시 나왔다. 늦으면 자신의 몫의 빵은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브리트니가 달려가는 길 맞은편에서 이미 빵을 받은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지나온 길을 흘낏거렸다.
"저들이 빵을 주지만 않았으면 환호고 뭐고 없었지."
"이런 곳에 와서 겨우 빵 하나 주고 숫자를 높이다니, 알 만한 사람들이라니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제들을 좋아하는 이는 몇 없었다. 높은 숫자 덕분에 좋은 곳으로 가서 좋은 것들을 보며 산 사람이 이런 곳에 와서 빵 하나 나눠주는 일로 또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는 차지 않는 것이었다.
겨우 빵 하나였다. 그마저도 마을 사람들 전체를 배불리 먹일 수 없을 개수의 빵. 사람들은 이런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자가 악의로 독을 푼 우물을 부수고 깨끗한 우물을 다시 만들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그것을 거절했다. 새로운 시설을 만들면 얼마 가지 않아 부서질 것이라 세금이 낭비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반박할 수 없었다. 다 허물어져 가는 그들의 마을이 증거가 되어 거절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한때 이곳으로 온 사람들은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보려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노력은 쓸모없는 일이 되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도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니 모두 같을 것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의지를 잃었다. 잘해보려고 단합하면 배신자가 생기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뒤통수를 맞으니 점차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점수가 낮은 우리들이 움직여봤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들로 가득 찬다. 역시 신이 정해준 숫자는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브리트니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숨이 차도록 달렸다. 하지만 사제들은 이미 모든 빵을 다 나누어준 후였다. 비어버린 그들의 보따리를 보자 그제서야 실망감이 몰아쳤다. 몸 성한 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먼 거리에 있는 구원.
속상한 마음을 안은 브리트니는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등을 돌렸다. 지금 내리쬐는 햇살이 이상하리만치 따갑게 느껴진다. 어릴 적에는 작은 것 하나에도 마음이 가라앉고 슬퍼지기 마련이라 브리트니는 가라앉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내 달리기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그 슬픈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한 명의 사제가 브리트니를 불러 세웠다.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브리트니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쳐다봤고 하필 그의 뒤로는 태양이 쏟아지고 있어 눈이 부셨다. 차마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있는 브리트니와 다르게 사제는 꾸준히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지런히 오면 다음번에는 빵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게으르게 살지 않기를 신께 기도하자."
박제되어 버린 미소에 브리트니의 심장이 끝없이 요동쳤다. 브리트니가 빵을 받지 못한 이유를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일축해버리는 행동에 다리가 달달 떨린다. 무서워하지 않기 위해 악을 쓰고 자그만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 말씀이 옳습니다. 더 부지런하게 일어나 선한 마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 다짐에 사제가 환히 웃었다. 깨끗한 손으로 냄새나는 머리카락에 손을 올려 기도를 행하니 그것이 신의 안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친히 기도한 사제는 브리트니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다가 귀를 잡아당겨 숫자를 확인했다.
"착하게 살아가렴."
"예."
바쁘게 뛰어가는 브리트니의 노란 눈이 공포로 일렁거렸다. 너무나도 추악한 자가 선량하고 올바른 자를 맞이한 혼란일 것이리라.
"허억, 헉."

<젤리빈 장편 로맨스 소개>
출간 (예정) 목록
밤의 오라버니, 낮의 오빠_진심인
엑스트라는 기본 생활 원칙을 준수합니다_보라에몽
왕자치킨 배달보이_불꽃바나나
그녀는 괴물이 아니다_베리벨
이상한 나라의 라푼젤_삐누
위의 도서 외 매달 10여종 이상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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