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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이어령 (지은이)
- 출판사열림원
- 출판일2022-03-15
- 등록일2022-05-16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21 M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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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슬프고 아름다운 이별의 마침표,
시대의 지성 이어령 유고시집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 서문에서
2022년 2월 26일, 시대의 지성이자 큰 스승이었던 이어령이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보다 먼저 ‘하늘의 신부’가 된 딸 이민아 목사의 10주기를 앞두고 선생은 사랑하는 딸과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그는 소진되어가는 생의 끝에서 오래도록 이 시들을 모아 정리하고 표지와 구성 등 엮음새를 살폈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나기 며칠 전, 어렴풋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서문을 불러주며 이 시집을 완성했다.
1부 ‘까마귀의 노래’는 신에게로 나아가 얻은 영적 깨달음과 참회를, 2부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되는 생’은 모든 어머니에게 보내는 감사와 응원을, 3부 ‘푸른 아기집을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순수와 희망을, 4부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는 딸을 잃은 후의 고통의 시간을 써 내려간다. 헌팅턴비치는 딸 이민아 목사가 생전 지내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도시다. 일찍이 떠나 닿을 수 없게 된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이어령’의 마음은 정제된 시어를 통해 투명한 슬픔으로 빛난다. 부록은 선생이 평소 탐미했던 신경균 도예가의 작품에 헌정하는 시들을 모았다.
불 켜진 창문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들을 마주 보렵니다 / 눈이 있는 모든 생물과 만날 때에도 그렇게 하렵니다 // (중략) 누군가 제 눈을 보고 두드리면 저도 그에게 / 제 방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 그의 키가 제 지붕만큼 높아질 때까지 / 우리는 우리의 방들을 모아 큰 집을 지을 것입니다.
― 「나의 몸 나의 방」 부분
이어령 선생은 날카롭고 단호한 시선으로 세계를 꿰뚫어보는 명철의 소유자였지만,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세상과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사랑과 공생의 힘, 인간의 선한 마음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확신과 행동, 삶과 죽음의 형태로 순환하는 영원한 생명의 가치……. “보듬어 안을 작은 생명들을” 돌보기 위한 비상을 꿈꾸며 “활이 아니라 하프가 되거라” 평화를 강조하던 선생의 나직한 음성이 여전히 귓전에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가난의 추위”, “혼자 있는 추위”, “전쟁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좀 더 따뜻한 게” 필요하다. “어머니의 겨울 이야기” 같은 자애로운 보살핌, “땅속에 묻힌 파충류의 꿈”처럼 지긋이 품은 내일에 대한 기대, “허들링으로 벽을 만들어 눈보라를 막는 펭귄들의 사랑”에서 느껴지는 배려의 온기 같은 것. 이 ‘따뜻한 것’들이 “천년의 추위에도 떨지 않는 사람들의 생, 사랑의 양식”이 되어 공생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일지도.
생의 한가운데 죽음이라는 고향으로,
엔딩 크레디트에 놓은 꽃 같은 시집
눈을 뜨면 그 많던 밤은 가고 / 부활의 아침이 온다 // 오직 하나의 아침을 위하여 / 떠오르는 태양을 보거라 / 너의 아침은 나의 아침 / 아침은 하나.
― 「하나의 아침을 위하여」 부분
‘메멘토 모리’, 선생의 좌우명과도 같았던 말. 이어령은 치열한 삶의 궤적을 지나오며 잠시도 죽음을 잊지 않았다. 죽음은 탄생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지 영원히 닫혀버리는 결말 같은 것이 아니라고. 선생은 “죽음이 허무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딸 이민아 목사의 인생을 보고 배웠다고 말한다. “까맣던 밤이 가고” 오늘도 내일도 아침은 온다. 흐려지지 않는 빛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찬란한 목숨의 부활”은 “다시 암흑을 치는 번갯불처럼” 눈부시게 찾아온다.
“한 호흡의 입김”조차 나누지 못하고 “내 살 내 뼈를 나눠준” 사랑하는 딸을 잃어야 했던 뼈 시린 아픔. 이들은 이제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지 않고, 더는 “네가 없는 시간 속으로” “혼자” 걸어가지 않는다.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 이어령 (광화벽화 추모 문구)
저자소개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지성의 오솔길』 『젊음의 탄생』 『한국인 이야기』, 문학평론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문명론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가위바위보 문명론』 『생명이 자본이다』 등 160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목차
서문
1 까마귀의 노래
당신에겐 눈물이 있다
꽃과 빵
야곱의 우물물이 눈물이 되던 날
눈물 없이는 먹을 수 없는 빵
기도는 접속이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제비
비둘기
까마귀의 노래
독수리의 눈
힘
지팡이를 드신 분
욥의 노래
생물
십자가
까치밥
백두산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꽃 하나의 의미
2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되는 생
빈 운동장의 경주
추위에 바치는 노래
한 방울의 눈물에서 시작되는 생
바다와 하늘로 만든 김자반의 맛
돌상의 책과 금반지
쓴 사과
나의 몸 나의 방
미친 금붕어
어머니는 단청 같은 문화예요
어머니 냄새
생각하지
볼보를 만드는 사람들
다이애나 허그
달리기
왜 늑대가 온다고 했는가
35억 년의 진화
보이지 않는 십일면관음보살
까마귀와 편견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크면
마음
손을 펴봐요
3 푸른 아기집을 위해서
사자의 눈
말 한마디로
젓가락의 의미
내일은 없어도 모레는 있다
푸른 아기집을 위해서
뜸 들이기
거울 보기
비행기
그네 타기
초록색 별
천억 개의 컴퓨터를 가진 아기
세워놓고 보는 동전
신 포도를 먹고 사는 사람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
활이 아니라 하프가 되거라
네 머리에 나비가 앉으면 리본이 되지
찰흙 놀이
엄마 아빠는 한 사람
이 세상에서 제일 값진 방울
시계
혀가 이겨
뭐든지 아빠처럼
잠은 솔솔
4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살아 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
오늘도 아침이 왔다
네버랜드로 가자
달리다 굼
목숨의 깃발
숨겨진 수의 기적
죽음의 속도계
겨울이 아직 멀었는데
만우절 거짓말
사진처럼 강한 것은 없다
사진 찍던 자리
하나의 아침을 위하여
전화를 걸 수 없구나
기억 상자
네가 앉았던 자리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네 생각
그 많은 사람들이 저기 있는데
돈으로 안 되는 것
죽음에는 수사학이 없다
무덤
지금 몇 시지
가나의 결혼식
하늘의 신부가 된 너의 숨소리
혹시 너인가 해서
바람 부는 저녁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5 부록
만전춘의 오리가 우리에게로
마음을 담은 연적
비취보다 더 푸르고 아름다운
어디에 있다가 이제 왔는가
국화, 점들의 기도
너와 내가 하나가 되듯
천년의 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