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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양승광 (지은이)
- 출판사씽크스마트
- 출판일2020-01-20
- 등록일2022-08-31
- 파일포맷pdf
- 파일크기3 M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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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에게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을 허하라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하니까.”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는 이 말.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불문하고 진리인 것처럼만 여겨진다. 일을 목전에 두고 우리는 버릇처럼 말한다. “주어진 시간은 똑같잖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 진리의 파급력은 실로 엄청나다.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다’는 문장은 ‘그러니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다’와 연결되며, 곧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공정하다’, 나아가 ‘네가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네가 게을렀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게으름’을 비난하기 위해 ‘시간은 공평하다’는 명제를 끌고 들어오기도 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 칠 일, 한 달 삼십 일, 일 년 삼백육십오 일. 모두에게 흘러가는 동일한 시간.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정말로 우리는 똑같은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정말로 시간은 공평할까?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는 한국 사회를 당연하게 지배하고 있는 명제에 의문을 던진다. 이 책의 저자 양승광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을지 몰라도 우리가 ‘누리는’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출생의 운(luck)이 우리가 마음껏 누려야 할 삶의 시간을 불평등하게 만들었으며, 이 사회는 운(luck)에는 눈감은 채 자유와 공정만을 강조하여 그 불평등을 제도화시켜버렸다고 고발한다.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끌고 나가는 키워드는 ‘자유로운 시간’, 그리고 ‘인간다운 삶’이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생존’과 ‘삶’을 계속해서 대비시킨다. 성남시장 은수미가 책 제목으로 ‘Time to Survive, Time to Live'를 제안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양승광은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크게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쳤던 시간의 불평등에 대해 조명한다.
양승광은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를 통해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시간은 공평하다’라는 진실 같던 거짓 명제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노동소득자를 옭아매는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등을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특유의 문체로 고발하고 있다.
한편, 이 책의 추천사 또한 주의 깊게 읽어볼 만하다. 정치, 종교, 문학, NGO의 각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각자의 관점을 가지고 추천사를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짧은 추천사들을 통해 그 영역들이 삶과 시간을, 인간다움과 정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성남시장 은수미, 소설가 조해진 추천★
시간과 정의에 대한 인문학
여기, 중소기업을 다니는 한 회사원이 있다. 이름은 박개미 씨.
박개미 씨는 막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 참이다. 씻고 저녁을 먹자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밀린 집안일이 눈에 들어오지만, 박개미 씨는 애써 무시하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어디선가 ‘남들은 퇴근한 뒤에도 자기계발 하느라 바쁘다는데. 스스로가 한심하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애써 무시해본다. 내일 무리 없이 출근하려면 지금 자야 하는데. 왠지 그냥 자는 것은 너무 아쉬워서 SNS 등을 뒤적거리다가 새벽 1시쯤에야 잠이 든다. 지금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너무나 피곤할 게 뻔한 데도.
어딘지 익숙하다. 평범한 우리네 모습이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저녁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퇴근하면 씻고 집안일을 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는 걸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몸을 일단 바닥에 누인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보며 ‘아, 뭐라도 해야 하는데. 이대로 잠들고 싶진 않다.’ 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온전히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때는 바로 그때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러나 이 시간들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우리 개개인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시간만이 인간이 인간답게 누리는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법정 노동 시간은 물론 법률상 ‘휴게 시간’으로 불리는 점심시간 때에도, 심지어 퇴근한 후에도 노동을 끝내지 못한 채 붙들려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누릴 수 있는 시간, 이 자유시간의 길이는 과연 공평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의 길이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기, 두 아이가 있다. 김민지와 박현수.
김민지는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집안 살림에 전액장학생을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대신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은 뒤 카페로 출근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김민지의 4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노동과 공부, 그리고 빚으로 채워진다.
한편 박현수는 자율형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김민지와 같은 대학에 들어갔다. 김민지가 대학생이자 카페 알바생으로 살아가는 사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그 경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무급 인턴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박현수의 이력서에 들어갈 문구들이 착실히 쌓여간다. 김민지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그리고 그중에서 자신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곳을 다니며 더 나은 회사의 정규직 준비를 하는 동안 박현수는 무급 인턴으로 일했던 대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승진하여 경력을 착실히 쌓아나갔다. 같은 시기에 같은 대학을 입학했던 두 사람. 과연 10년 뒤에도 둘은 같은 자리에 서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분명 박현수가 김민지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김민지의 노력이 박현수의 노력보다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김민지가 더 노력했다면 박현수만큼, 아니 박현수보다 높이 올라갈 수 있었을까? 백퍼센트, 그럴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민지와 박현수,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오로지 출생에 달려 있었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의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있는 집에서 태어난 박현수와 4년제 대학의 학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던 집에서 태어난 김민지. 이 둘의 출생을 가른 것은 운이었다. 능력도 의지도 아닌 운(運, luck) 말이다. 이 운을 배제하고 이야기하는 공정이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
‘시간은 공평하다’라는 문장과 으레 이어지는 ‘노력하면 다 된다’ 혹은 ‘게으름은 죄다’라는 말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김민지가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 이유를 김민지의 노력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의 저자 양승광은 우리에게 ‘시간은 공평하다’라는 뻔하디 뻔한 명제에서 벗어나볼 것을 권한다. 앞서 말했던 ‘노력하면 다 된다’와 ‘게으름은 죄다’라는 두 문구는 사실, 선(善)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오롯이 자유롭고 잉여롭게 쓰기 위해서는 우리를 채찍질하는 이런 말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각을 좀 더 넓혀서 시간과 사회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이 책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는 어떻게 해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진정한 ‘나만의 시간’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또 이와 관련된 사회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조곤조곤 말을 건네고 있다. 불편한 현실을 바꾸자는 내용의 책은 아니다. 또 어떠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도 아니다. 다만 저자는,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에 그냥 눈 뜨고 똑바로, 지금의 현실을 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시간과 정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모든 변화는 바로 대화에서 시작된다고 말이다. 그런 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고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다.
이제 다시 한 나의 하루를 구성하고 있는 시간들을 바라보자. 성과만을 요구하는 사회의 눈이 아닌, 이 세상의 중심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눈으로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내가 누리는 시간이 많아질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보자. 개인의 삶을 이루는 시간은 삶 그 자체다. 우리의 삶이 끝나는 순간 시간 역시 끝난다. 우리에게 허투루 낭비될 수 있는 시간이란 없다. 더 이상 다른 이를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이용하지 말자. 나만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우리 자신에게 잉여로울 시간을 허하자.
저자소개
경계인 임금노동을 통해 두 딸과 아내,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며 남는 시간과 돈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임금노동의 종류가 연구가 아닌 일반 사무라는 것. 그러한 이유로 내게는 가족 구성원, 임금노동자 이외에도 사회법 연구자라는 역할이 교차하여 부여된다.가족구성원 가족들한테 많이 미안하다. 학위논문을 준비하며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 소홀했던 탓이다. 다행히도 논문을 마치고 들어갔던 육아휴직으로 미안함을 조금 덜어냈다. 하지만 그만큼 통장에는 마이너스가 불어났다.
임금노동자 십여 년 전, 입사원서를 넣을 때만 해도 한 직장에 이렇게 오래 붙어있을 줄은 몰랐다. 월급을 모아 다른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계획은 없었으나, 이 직장을 십 년 이상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할 것만 같다. 조그만 녀석들이 어찌나 많이 먹는지….
연구자 학교를 다니며 KTX 여승무원, 전교조, 부양의무,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다양한 주제로 소논문을 썼지만, 박사 논문 주제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전문 분야를 물을 때마다 난감하다. 그때그때 관심 분야가 달라지니 말이다. 연구로 생계를 책임질 것도 아니니 전문 분야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핑계를 대고 있다.
귀차니스트 스스로의 취미를 공부라고 이야기한다. 비폭력대화(NVC), 회복적정의(RJ) 쪽도 꽤 많은 교육을 이수했다. 시험은 싫어하지만 공부는 좋아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몸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니 취미로 삼을 만한 게 공부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여기에 대해 딱히 반박을 못하는 입장이다.
목차
추천사 •4
프롤로그 세상에 공평한 게 있긴 할까 •12
Ⅰ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같으니까 •24
시간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 •29
인간에게 ‘시간’은 ‘삶’과 동의어 •38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42
생존이 아닌 자유 •47
우리가 누리는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51
Ⅱ 직장인의 시간은 어떻게 달라질까
근로보다 노동 •58
퇴근은 왜 노동을 끝내지 못하나 •63
사는 곳이 삶의 시간을 결정한다 •72
정신 승리가 필요하다 •77
Ⅲ 비정규직은 어떻게 신분이 되었을까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의 존재 이유 •90
차별적 신분으로서의 ‘비정규직’ •96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공정하지 않은 걸까 •110
Ⅳ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동일할까
내일을 위해 내일을 당겨쓰는 삶 •124
나의 아르바이트는 왜 차별받을까 •131
못 먹어도 GO •146
Ⅴ 게으름과 노력, 그 일란성 쌍생아
시간에 쫓기면 게으른 걸까 •158
우리는 왜 습관적으로 비교를 할까 •167
게으름과 노력은 일란성 쌍생아 •177
Ⅵ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삶을 누린다는 의미 •188
시간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193
내게 잉여로움을 허하라 •202
에필로그 제도화된 불평등을 넘어서 •214
주석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