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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점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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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점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채만식 지음 
  • 출판사다온길 
  • 출판일202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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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깊으련 하다가 채 못 깊고 새는 게 첫여름의 가냘픈 새벽이다.

밤은 대전역(大田驛) 그 근처서부터 휘엿이 벌써 동이 트더니, 호남선으로 선로가 갈려들어, 촌 정거장을 세넷 지나 K역을 거진 바라볼 무렵에는 연변의 농가에서 마침 연기가 겨루듯 솟아오르고, 두어 장 구름이 잠자던 동녘 수평선 위로 불그레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차는 유축없이 그대로 세차게 달리고.
경희는 차창 앞으로 바투 다가앉아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에 한동안 무심하다.
끝없이 퍼져나간 넓은 들이 창밖에서 커다랗게 회전을 한다. 들바닥에는 오늘도 날은 좋으려는지 엷은 안개가 조용히 잦아졌다.
잘 갈아서 잘 태운 마른갈이 논이 자꾸자꾸 잇대어 있는 사이사이로, 바다 가운데 작은 섬 같은 못자리판이 물을 그득 싣고, 모는 이쁘게 푸르다.
논도 못자리판도 모내기를 앞에 두고서 마침 서로 대기를 하고 있는 체세다.
조그마한 야산(野山) 산발을 타고 모퉁이를 돌아 나서면, 얕은 언덕을 의지삼고 다섯 채 열 채 농가가 들어앉은 촌락이 으례건 기다리고 있다. 울타리도 앞뒤 언덕도 모두 푸르다. 그중에 보리밭만 보리가 다 익어서 누렇게 고스러졌다.
언덕과 촌락이 다하면 다시 들판이 넓고, 들판을 한동안 잊고 달리느라면 어느새 또 비슷 같은 언덕과 촌락이 나오고.
평범하다 할지언정 별반 탐탁스럽게 아름다운 경치는 아니다. 그러나 그만해도 벌써 육칠 년 전, 그때까지는 일 년 두고도 몇 차례씩 고향을 오고가고 하면서 자주자주 대하던 연변의 풍경이요, 그러한 만큼 어쩌면 모두가 낯에 익은 듯, 또 어쩌면 생소한 듯한 것이 모처럼 반가와서 좋고 겸하여 비록 교외에서 거처는 했다지만 그와는 정취가 달라, 아낌없이 개방적인 첫여름 전야(田野)의 아침이 신선해서 또한 좋았다.
--- “반점(斑點)”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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