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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생상스의 고전음악수업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카미유 생상스
- 출판사유페이퍼
- 출판일2024-06-19
- 등록일2024-11-11
- 파일포맷pdf
- 파일크기655 K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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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카미유 생상스 (1835년 10월 9일~1921년 12월 16일)샤를르-카미유 생상스Charles-Camille Saint-Saens는 낭만주의 시대에 프랑스의 작곡가, 오르간 연주자,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잘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Introduction et Rondo capriccioso》(1863), 피아노 협주곡 2번(1868), 첼로 협주곡 1번(1872),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1874),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Samson et Dalila》(1877), 바이올린 협주곡 3번(1880), (“오르간”) 교향곡 3번(1886), 《동물의 사육제 Le carnaval des animaux》(1886)가 있다.
생상스는 음악 신동이었다. 그는 10살 때 연주 무대에 데뷔했고 파리음악원을 졸업 후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서 평범하게 커리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파리의 생메리Saint-Merri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했고, 1858년부터는 프랑스 제국의 공식 교회인 마들렌 교회La Madeleine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20년 후에 교회를 떠난 생상스는 프리랜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유럽과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젊은 시절의 생상스는 당시에 가장 현대적인 음악, 특히 슈만Schumann, 리스트Liszt, 바그너Wagner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자신은 전통에 따라 작곡했다. 그는 음악사에 정통했고 초기의 프랑스 작곡가들의 방식을 따랐다. 이 때문에 나중에 인상주의 음악가들, 12음 기법을 지지하는 작곡가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의 음악에는 신고전주의적인 요소가 있어 스트라빈스키Stravinsky나 프랑스 6인조*에게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생상스는 사망 당시에 진보나 변화를 반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Les Six. 에릭 사티(Eric Satie)를 추종하는 작곡가들인 루이 뒤레(Louis Durey), 조르주 오리크(Georges Auric), 아르튀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 제르맹 테유페르(Germaine Tailleferre), 프랑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를 일컫는 말.
생상스의 교육자로서의 경력은 파리의 고전종교음악 학교Ecole de Musique Classique et Religieuse에서 가르친 경험이 유일하고, 그마저도 5년을 채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기간 동안의 그의 가르침은 프랑스 음악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생상스의 제자들 중에는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가 있었고,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이후에 포레의 제자가 됐다. 포레와 라벨 모두 생상스를 천재로 여기며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