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상세보기

프루아사르의 연대기 : 백년전쟁의 전투들 - AI가 풀어쓴 하버드 클래식 총서 (커버이미지)
알라딘
프루아사르의 연대기 : 백년전쟁의 전투들 - AI가 풀어쓴 하버드 클래식 총서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장 프루아사르 
  • 출판사위즈덤커넥트 
  • 출판일2024-07-10 
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책소개

<미리 보기>
영국 왕은 부하들이 아이귀용 성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군을 이끌고 가스코인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준비를 마치고 왕국 전역과 돈을 받고 병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다른 곳에서 병사들을 소환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 추방된 하코트의 고드프리 경이 영국에 왔다. 그는 왕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영국에 있는 땅을 받아 그의 지위를 뒷받침했다. 왕은 햄프턴 항구에 대규모 함대를 준비하도록 명령하고 모든 군인을 그곳으로 모이게 했다. 1346년 성 요한 세례 축일 무렵, 왕은 여왕을 사촌인 켄트 백작에게 맡기고 퍼시 경과 네빌 경을 캔터베리 대주교, 요크 대주교, 링컨 주교, 더럼 주교와 함께 왕국의 수호자로 임명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없을 때 왕국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인원을 남겨두었다. 그런 다음 왕은 햄튼으로 이동해 순풍이 불기를 기다렸다. 그는 웨일즈 왕자, 하코트의 고드프리 경, 그리고 다른 영주, 백작, 남작, 기사들과 그들의 수행원들과 함께 배를 탔다. 군대에 동행한 아일랜드와 웨일스 보병은 포함하지 않고 4천 명의 병사와 만 명의 궁병이 함께했다.
에드워드 왕과 함께 여행에 동행한 영주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13세 정도였던 에드워드의 장남 웨일즈 왕자, 히어포드, 노샘프턴, 아룬델, 콘월, 워릭, 헌팅던, 서퍽, 옥스퍼드의 백작, 그리고 남작 중에는 나중에 3월 백작이 된 모티머 경, 보샘프의 존, 루이스, 로저 경, 레이놀드 코밤 경이 있었다. 또한 모브레이, 로스, 루시, 펠튼, 브래데스탄, 멀톤, 델라웨어, 만, 바셋, 버클리, 윌러비 등의 영주와 다른 여러 영주들도 함께 참석했다. 학사 중에는 존 찬도스, 피츠와린, 피터와 제임스 오들리, 웨텐할레의 로저, 버거쉬의 바르톨로뮤, 펨브리지의 리처드 등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외국인으로는 하이노 백작, 기스텔레의 울파르트 경, 독일에서 온 대여섯 명의 기사, 그리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많은 다른 기사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날 신의 이름으로 항해를 떠났다. 가스코니를 향해 순조롭게 항해하던 그들은 3일째 되던 날 역풍으로 인해 콘월 해안에 도착해 6일 동안 닻을 내리고 정박했다. 그 기간 동안 국왕은 고드프리 하코트 경으로부터 다른 조언을 받았다. 그는 왕에게 가스코니로 가지 말고 노르망디에 상륙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왕에게 말했다: "전하, 노르망디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그곳에 상륙하면 아무도 저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노르망디 사람들은 전쟁에 익숙하지 않으며, 모든 기사와 종자들은 현재 공작과 함께 아이귀용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요새화되지 않은 큰 마을을 찾을 수 있으며, 전하의 부하들은 20년 동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부를 얻을 것입니다. 전하, 노르망디의 캉까지 군대를 이끌고 행군할 수 있습니다. 전하, 이 여정에서 저를 믿어주십시오."
<추천평>
"고전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는 프루아사르트가 왕들과 그들의 조언자들이 말한 내용 그대로만 기술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에드워드 3세는 그의 기사 중 한 명이 칼레의 시민들을 살려두라고 충고했을 때 정말로 이를 갈았을까? 중세 후기의 색채에 대한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가득한 책이다."
- Jan Mat, Goodreads 독자
"중세 전쟁과 100년 전쟁의 정치적 맥락에 대한 묘사로 유명하지만, 프루아사르의 연대기는 부수적인 시대적 세부 사항도 풍부하게 제공한다. 13세기 영국과 유럽 대륙 전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플랑드르 출신의 프루아사르트는 여러 궁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태도, 계급과 성별 차이에 대한 태도, 종교와 중세 정치의 복잡성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그는 거의 모든 곳을 가든 어느 정도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흥미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또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가 왕실 연회 주위를 떠다니는 모습이 상상된다."
- Sarah, Goodreads 독자
"이 책은 일종의 폭동이었다. 모든 내용이 역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매우 아서 왕, 원탁의 기사, 낭만적 인 사랑, 고귀하고 명예로운 서사시였다. 그리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죽임을 당한 장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는 정말 고귀한 사람이었지만 실제로 전쟁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흥미롭고 생생한 역사 이야기."
- Maria, Goodreads 독자
"프루아사르가 종종 서민에 대한 이야기를 생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연대기가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전쟁 중에 일어난 기사들 관련 사건들 대한 역사를 쓰겠다는 그의 목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루아사르트는 전쟁이 사회의 나머지 부분에 미치는 영향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는 서유럽의 여러 지역의 대중 반란에 광범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연대기의 이 부분에서 저자는 종종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좋은 이해를 보여주곤 한다."
- Marcos, Goodreads 독자
"지금까지도 역사 수업에 가장 필요한 필독서이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신에 대해 너무 많이 중얼거리지 않고, 약탈에 대한 섬뜩한 세부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유령 이야기와 중세 비유에 대한 몇 가지 다른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 Max, Goodreads 독자

저자소개

장 프루아사르(Jean Froissart)n프랑스의 중세 작가이자 궁정 역사가.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던 에노 백국의 발랑시엔 출신이다. 프루아사르가 쓴 시들에서 드러나는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그의 아버지가 문장(紋章) 화가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또한 프루아사르가 처음엔 상인이었다가 머잖아 포기하고 성직자를 모색했다는 설도 있으나 이 역시 그의 시에 나타난 자전적 요소의 신빙성 자체가 의문시되기 때문에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1361년경 에노를 떠나 영국에서 에드워드 3세의 왕비인 에노의 필리파의 가신이 되었다. 이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의 궁전을 탐방하고 연대기 작가로서 중세 봉건제하 유럽의 풍속과 당대의 기사도와 궁정연애를 충실히 기록했다. 이 대표적인 저작이 4권으로 이루어진 『프루아사르 연대기Froissart’s Chronicles』로 주요 사건들을 직접 보고 핵심 인물들을 탐문하는 방식으로 백년전쟁의 전반부를 치밀하게 기록함으로써 역사적 가치가 높은 14세기 최고의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밖에 사람에 빠진 연인의 마음을 시계에 비유한 시 『오를로주 아무흐(사랑의 시계)』, 아서왕의 전설을 소재로 사랑과 모험을 그린 장시 『멜리아도르』등이 있다.

한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