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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리의 남지나해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노자영
- 출판사문학일독
- 출판일2024-09-09
- 등록일2024-11-11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13 M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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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상해 생활 2년간 - 얼마나 괴롭고 지루한 생활이냐? 한마리 새가되어 창공에 날듯이, 오늘은 이 상해를 시원하게 떠나버리자.
내가 탄 ‘센홍소’호는 시커먼 상해 부두의 물결을 헤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개미때 같이 우물거리는 인파의 물결, 사랑과 눈물로 얽매인 테프의 난무(亂舞) - 상해는 그래도 떠나는 이 배에게 애도의 눈물을 남기려고 함인가?
센홍소호는 그들에게 한마디 답례를 하는듯이 웅! 하고 소리를 치고는, 나는 바다속에 사는 한마리 고래라는 듯이 창파를 헤치고 항해를 시작한다. 검은 연기와 훤조(喧燥)와 굉음과 피와 쇳덩어리로 묻혀있던 생활에서 나는 매미 껍질 벗듯이 벗어나서, 이 창해(倉海)위의 한 마리 물새가 된듯하다. 시원도 하거니와 또는 아름다운 출발의 첫 코스인 것이다.
--- “5천리의 남지나해” 중에서
저자소개
1919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 입사했으며,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서울≫·≪학생≫지의 기자로 있으면서 감상문 등을 발표했다.1925년경 일본으로 넘어가서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였으나 폐질환으로 5년간 병석에 있었다.
1934년 ≪신인문학(新人文學)≫을 간행하였으나 자본 부족으로 중단되었다.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여 ≪조광(朝光)≫지를 맡아 편집하였다.
1938년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청조사(靑鳥社)를 직접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작품 활동은 1919년 8월 ≪매일신보≫에 '월하(月下)의 몽(夢)'이, 그 해 11월에 '파몽(破夢)'·'낙목(落木)' 등이 시부분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 창간 동인으로 가담하여 ≪백조≫ 창간호에 시작 '객(客)'·'하늘의 향연(饗宴)'·'이별한 후에'를 발표했고, ≪백조≫ 2호에 '우연애형(牛涎愛兄)에게'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1923년 소설 ≪반항(反抗)≫, 1924년 첫 시집 ≪처녀(處女)의 화환(花環)≫, 1928년 제2시집 ≪내 혼(魂)이 불탈 때≫, 1938년 제3시집 ≪백공작(白孔雀)≫ 등을 간행하였다.
1940년 10월 6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