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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산의 반달 못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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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산의 반달 못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노자영 
  • 출판사문학일독 
  • 출판일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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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해안 한 모퉁이에 있는 몽금포 금모래하면 대강 지리를 아는 사람은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십리일대에 뭉쳐있는 은가루 같은 세사(細砂)! 그위에 금빛 해가 비치면 모래는 금으로 변하고 이것을 이름하여 금사(金砂)라 하는 것이다. 황금이 섞인 모래위에 해당화가 피고 바람이 불면 샛빨간 꽃위에 모래바람을 날리니 그때 해당화야말로 하얀 면사포에 싸인 어여쁜 아씨가 비단 자리에서 무릎을 굽히는 모양이라. 그 광경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니 이 까닭에 매년 4~5월이 되면 그것을 보러오는 사람이 실로 적지않다. 친구 세사람과 함께 황금이 섞인 모래의 해당화를 찾았던 나는 다시 금계산(金鷄山)의 반달못을 찾기로 하였다.
--- “금계산의 반달 못” 중에서

저자소개

1919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 입사했으며,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서울≫·≪학생≫지의 기자로 있으면서 감상문 등을 발표했다.
1925년경 일본으로 넘어가서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였으나 폐질환으로 5년간 병석에 있었다.
1934년 ≪신인문학(新人文學)≫을 간행하였으나 자본 부족으로 중단되었다.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여 ≪조광(朝光)≫지를 맡아 편집하였다.
1938년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청조사(靑鳥社)를 직접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작품 활동은 1919년 8월 ≪매일신보≫에 '월하(月下)의 몽(夢)'이, 그 해 11월에 '파몽(破夢)'·'낙목(落木)' 등이 시부분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 창간 동인으로 가담하여 ≪백조≫ 창간호에 시작 '객(客)'·'하늘의 향연(饗宴)'·'이별한 후에'를 발표했고, ≪백조≫ 2호에 '우연애형(牛涎愛兄)에게'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1923년 소설 ≪반항(反抗)≫, 1924년 첫 시집 ≪처녀(處女)의 화환(花環)≫, 1928년 제2시집 ≪내 혼(魂)이 불탈 때≫, 1938년 제3시집 ≪백공작(白孔雀)≫ 등을 간행하였다.
1940년 10월 6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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