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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의 여름길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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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의 여름길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노자영 
  • 출판사문학일독 
  • 출판일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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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티끌 많은 서울 - 분주히 떠드는 서울 - 더러운 냄새 많은 서울 - 남대문에서 기적한 소리로 이 서울을 작별하고, 북으로 향하는 열차의 한 사람이 되었다.
오랜동안 이러한 서울의 공기를 마시며, 이러한 서울의 물을 먹으며, 이러한 서울의 땅을 밟으면서, 티끌 속에서 떠드는 소리속에, 검은 냄새아래 딩굴고 헤매며 골치 앓던 나는, 어느 감옥을 벗어나 자유로운 몸으로 두 날개를 벌리고 푸른하늘 위로 둥실둥실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가득해진다.
M사장이 정해주는 자리에 앉아 차내를 한번 둘러보았다. 조선인, 일본인들이 꽤 많이 올라왔다. 그들의 이마에는 진주알 같은 땀이 방울방울 어리었다. 모두들 더위에 안타까운듯이 모자로, 부채로, 수건으로 얼굴을 부치며

“에 - 더워 에 - 더워 -”
--- “천리의 여름길” 중에서

저자소개

1919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 입사했으며,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서울≫·≪학생≫지의 기자로 있으면서 감상문 등을 발표했다.
1925년경 일본으로 넘어가서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였으나 폐질환으로 5년간 병석에 있었다.
1934년 ≪신인문학(新人文學)≫을 간행하였으나 자본 부족으로 중단되었다.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여 ≪조광(朝光)≫지를 맡아 편집하였다.
1938년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청조사(靑鳥社)를 직접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작품 활동은 1919년 8월 ≪매일신보≫에 '월하(月下)의 몽(夢)'이, 그 해 11월에 '파몽(破夢)'·'낙목(落木)' 등이 시부분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 창간 동인으로 가담하여 ≪백조≫ 창간호에 시작 '객(客)'·'하늘의 향연(饗宴)'·'이별한 후에'를 발표했고, ≪백조≫ 2호에 '우연애형(牛涎愛兄)에게'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1923년 소설 ≪반항(反抗)≫, 1924년 첫 시집 ≪처녀(處女)의 화환(花環)≫, 1928년 제2시집 ≪내 혼(魂)이 불탈 때≫, 1938년 제3시집 ≪백공작(白孔雀)≫ 등을 간행하였다.
1940년 10월 6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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