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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길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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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길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그라치아 델레다 (지은이), 이현경 (옮긴이) 
  • 출판사휴머니스트 
  • 출판일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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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황폐한 마음을 열고 들어온 악에 운명을 내맡긴 존재들,
되돌릴 수 없는 악의 길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진실


여성 작가로서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라치아 델레다의 초기 대표작. 국내 초역. 황폐한 마음에 싹튼 악에 운명을 내맡긴 존재들이 지은 죄와 죄책감의 내적 갈등을 다룬 소설로, 이탈리아 본토와는 또 다른 사르데냐섬의 풍경과 문화도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리석음과 모순, 그리고 격렬한 열정에 굴복한 사람들이 걷는 악의 길. 그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진실을 포착해낸 순간은 비윤리적인 사회의 공범으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델레다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1896년 《악의 길》을 처음 발표한 이후 1916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개작하면서 다면적이고 균형 잡힌 등장인물들을 사르데냐섬의 풍경과 문화 안에 녹여냈다.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각 인물이 겪는 내적 갈등이 극대화되며, 실제로 소리 지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치지 못하는 절규 속에서 각자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이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

거친 땅에 뿌려졌다가 우연히 싹을 틔운
거짓과 배반, 허영과 기만의 소용돌이


델레다는 사르데냐섬의 내륙지역인 누오로시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정교사에게 표준어인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을 배우는 동안 사르데냐 농민들의 삶과 그들의 도전적인 정신에 영감을 받아 단편소설을 쓰는 데 관심을 보였고, 이후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델레다는 수많은 작품에서 독특하고 신비한 사르데냐섬의 풍경과 문화를 다루었는데, 이를 단순히 배경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사르데냐섬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등장인물들의 삶과 감정에 대한 적절한 은유로 쓰인다. 192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고향인 외딴섬’에서의 삶을 맑은 물속처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에트로는 갈아놓은 흙 속의 씨앗처럼 오래 잠을 잤다. 그 역시 신비하고 거친 땅에 아무렇게나 뿌려졌다가 우연히 싹을 틔우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운명에 몸을 맡긴 씨앗이었다.
그는 한밤중에 일어나 초막으로 들어갔다. 잿빛 안개가 낀 어둠이 고원과 계곡을 덮치고 해변의 산들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해변에서는 바다의 포효 같은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76쪽)

‘피에트로 베누’는 원초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주변 풍경을 자신의 몽상이나 순간적인 열정에 성급히 이입하는 청년이다. 그는 ‘마리아 노이나’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는데, 마리아는 누오로시에서 알아주는 부유한 농부의 딸로 허영심이 있으며 탐욕스럽다. 일을 막 시작할 때만 해도 피에트로는 마리아의 사촌인 ‘사비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연한 엇갈림을 매몰찬 거절로 여겨 괴로워하고, 그 순간 다른 친구 ‘로사’가 “피에트로 베누. 마리아는 사비나를 질투해요”라고 던진 농담에 사로잡혀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다. 마리아는 비천한 출신의 하인들을 경멸하지만 피에트로의 적극적인 구애에 생긴 허영심이 점점 커져 위험한 열정에 자신을 내맡긴다. 부자가 되면 마리아와 결혼할 수 있다고 믿는 피에트로와 달리 마리아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자신을 좋아한, 시의원이자 부유한 목동인 ‘프란체스코 로사나’와 결혼을 결정한다. 분노에 휩싸인 피에트로는 프란체스코를 죽여버리겠다며 숙모 집에서 몰래 권총을 챙겨 나오지만,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억울한 일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는 권총을 쏘았다. 총소리가 골짜기의 불안한 침묵을 깨뜨렸다. 곧이어 사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격렬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벌써 범죄를 저지른 것만 같았다. 불현듯 정신을 차렸고 사악한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걸었다. (……) 그는 구름이 여기저기 떠 있는 신비한 하늘 아래에서 걷고 또 걸었다. 때로는 어두웠다가 때로는 도망치는 달이 남긴 푸르스름하고 희미한 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친 오솔길이었다.”(192∼193쪽)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에서 걸음을 멈출까?”라고 외치는 피에트로. 절망적으로 방을 서성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되뇌는 마리아. 선과 악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실타래처럼 엉켜 있고, 등장인물 모두가 부도덕의 공범으로 살아간다. 미끄러운 장대 끝에 스카프, 치즈, 가방, 신발 등을 달아두고 끝까지 올라가기만 하면 모두 차지할 수 있는 장면에서, “낫날 조각을 발에” 묶는 반칙을 저지른 사람은 높은 곳에 도달해 원하는 것을 얻고, 정직하게 “맨발로 기어오르려고 애쓴” 사람은 미끄러지기만 한다. 사람들은 반칙한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를 닮으려 하고, 혹은 그저 관망할 뿐이다. 《악의 길》에는 주인공인 피에트로와 마리아뿐 아니라 아주 잠깐 등장하는 목동들까지도 자신들이 지은 죄가, 혹은 저지르고 싶은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는 이상한 논리를 동원해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고(“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지요!”), 누구는 절망하며(“주여, 그 징벌이 너무 가혹합니다…….”), 누구는 침묵한다(“목동들은 두려움과 비겁함으로 침묵했지”).

되돌아갈 수 없는 한복판에서 꽉 쥔 주먹
움켜쥐고 있는 건 외면, 혹은 진실


소설 말미. 끔찍한 진실을 마주한 마리아는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다 끝내 “피에트로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연관” 짓는다. 떠올리는 건 예전에 봤던 죄수들의 행렬이다. “함께 사슬로 묶인 채 둘씩 둘씩” 나아가던, “같은 쇠사슬에 묶여 같은 형벌의 장소”로 향해 가던 모습. 델레다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가 수 없는 길 한복판에 인물들을 데려온 후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알려준다. 그 상태로 어디로든 나아가라 재촉한다. 이 지점에서 《악의 길》은 단순히 사랑과 배신, 분노와 범죄 이야기를 넘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삶으로 스며든다. 사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부도덕의 공범이 아니냐고, 내면에 감추고 있는 거대한 모순과 욕망이 있지 않냐고 되묻는다.

저자소개

그라치아 델레다는 1871년에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작가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고 소녀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도 창작을 멈추지 않아서 생전에 50여 권의 책을 썼다. 1926년 델레다는 여성 중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사후에 발표된 자전적인 작품 〈코지마〉는 델레다의 많은 것들이 녹아 들어가 있다. 태어나고 성장한 누오로는 사르데냐 섬에서도 깊은 산속의 소읍으로 자연이 아름답다. 이밖에 대표작으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있다. 1899년 사르데냐 섬의 큰 도시인 칼리아리로 이주했다가 남편을 만났고 결혼과 함께 로마로 이사했다. 그리고 1936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골은 1959년 누오로로 옮겨졌다.

목차

악의 길 _007



해설 |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서다 _353

한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