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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그대로의 반영인 조선미술의 윤곽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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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그대로의 반영인 조선미술의 윤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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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김복진 (지은이) 
  • 출판사문학일독 
  • 출판일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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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의 미술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의 침략정책과 그 인연이 대단히 깊다. 다시 말하면 조선미술의 발생 시대라 하는 사군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벌과 병견(竝肩)하게 그 침입을 번거로이 받았다는 것이다.

사군시대 ‘낙랑,현둔,진번,임둔’으로부터 신라를 거쳐 현금의 조선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학살의 뒤를 이어 미술이 전래되었으며 또 이 전래된 미술이 생장되고 원숙된 것이 곧 조선의 미술이다.
--- “조선 역사 그대로의 반영인 조선미술의 윤곽” 중에서

저자소개

호는 정관(井觀). 김복진(金福鎭)이라고 표기되기도 했다.

충북 청원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계급문학운동가 김기진(金基鎭)의 형으로, 1915년 영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5년간 수학했다. 3?1운동에 참가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20년 도쿄 우에노 미술학교(上野美術學校) 조각과에서 공부했다.

1922년 5월 박승희?이서구?김기진 등과 함께 유학생 극단 토월회(土月會)를 결성했고, 1923년 5월 귀국한 후 계급문학단체인 파스큘라(PASKULA)에 참가했으며, 1925년 조선프로예맹의 창립에 가담했다. 1926년 1월 『문예운동』 발행을 주도했고 6월 사회주의 기관지 『대중신문』에 집필자로 참여했다. 같은 해 12월 조선프로예맹 조직에서 중앙위원이 되었다.

1927년 6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고 경기도위원회 학예야체이까에 배속되었다. 9월 조선프로예맹 중앙위원으로 재임하게 되었으며, 카프와 별도로 미술단체 흥창회를 만들었다. 1928년 2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3월 조공 경기도당 위원으로 선임되고, 고려공청 중앙위원 겸 경기도책, 학생부 책임자가 되었다. 7월 ‘제4차 조공 검사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0년 11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4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34년 2월 출옥한 후 애지사(愛智社) 창립을 주도했으며, 『청년조선』 창간호를 발행할 때 러시아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한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1934년 극단 신건설 사건에 연관되어 김기진과 함께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으나 보석되었다. 1935년부터 3년간 『중앙일보』 기자로 근무했고, 1939년 법주사 미륵대불 제작에 참여했다. 1940년 8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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