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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박목우 (지은이)
- 출판사옥탑방프로덕션
- 출판일2024-02-21
- 등록일2024-07-10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21 M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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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단편집은 동료상담으로 만난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정신장애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삶을 반추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휘말리게 되면서 삶의 위치가 아주 조금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담는다. 하지만 그 아주 작음이 있기까지 얼마나 흔들렸는지. 물낯처럼 물결지지만 투명하고 따듯한 봄의 거울 하나가 되어주는, 꿈처럼 작은 이들. 호수를 담은 별빛은 얼마나 작아지며 깜박이고, 별빛을 담은 호수는 얼마나 너르게 빛나는지. 아주 가까워진, 하나의 우주가 다른 우주를 만나면서, 서로 비추고 뒤척이고 이해하고 겹쳐지며 공통의 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조각들>은 우리가 너무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매력 자본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을 한 글이다. 서로 다른 위치를 지녔던 세 사람이 서로를 알며 이해해 나가는 동안 각자의 관점이 조금씩 바뀌게 된다. 그 ‘조금’이라는 건 마주침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세상이 ‘자연스럽게’ 소외시키는 존재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력 자본의 틀에 박힌 시선이 아니라, 선한 의지로 살아가려는 당사자들의 시선으로 매력 자본을 바라보면 어떤 다른 울림이 생성되는지 들을 수 있다.
<꽃의 긍정>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정신장애여성의 성(性)을 다루었다. 어린 시절의 근친 성폭행과 이혼 후의 고립과 유산으로 지독한 외로움을 겪는 정연에게는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없었다. 스스로일 수 없었다. 성적으로 자유롭다기엔 너무 절박하고 장애와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살아내고 있는 삶. 동료상담가를 만나면서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찾게 되고 자신의 서사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이며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따듯한 자긍이 차오르는 과정을 그린다.
<어떤 비밀>은 흔히 정신장애의 증상으로 해석하는 무표정과 감정의 메마름, 갑작스럽게 터지는 웃음과 같은 증상들이 단지 뇌의 화학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구조적인 폭력성과 그에 따른 트라우마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약물보다 오픈 다이얼로그와 같은, 대화를 통한 치유를 강조하는 대안적 치료법이 혁명적인 효과를 가지는 것일 테다. 대화를 통해 잃었던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아가게 되는 정신장애여성의 여정을 그리며 정신장애인에게 약물이면 모든 게 가능해지는지, 그렇지 않다면 이들에게 정작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정신의학이 놓치고 있는 것을 다시 묻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은 청소년기부터 고립되어 살아왔던 정신장애여성이 쉰이 넘은 나이에 정신장애 운동을 만나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그린다. 단순하고 편협한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던 방식이 동료상담을 만나면서 다층적이고 다정한 우정으로 변화하고, 관계가 더 풍요로워지고 친밀해지면서 조금씩 회복을 향한 여정으로 나아간다. 정신장애인에게 ‘소리들림’은 어떤 의미인지, 의학의 시선에서는 이상(異常)일 뿐일 ‘환청’을 당사자의 언어로 새롭게 정의해 보고 있다.
<신곡>은 앙토냉 아르토처럼 자신의 광기를 완성해 가는 정신장애남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아르토처럼 많은 언어를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생과 사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며 자신의 악(惡)을 완성해가는 죽음의 예술가로 동료상담가들은 승민을 정의한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선한 지향을 가지고 있는 승민을 보며 그를 위한 ‘만약’을 상상해 보는 장면을 담는다. 승민은 그의 병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왜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을까. 우리가 평등하게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당사자와 비당사자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목소리>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는 동료상담가들의 노력과 정성을 담는다. 그 과정에서 자해의 원래의 이유와 의미가 드러나고 세계의 폭력성이 폭로된다. 보통의 직업적인 상담가가 아니라 동료이기에 줄 수 있는 인내와 마음씀이 결국에는 당사자를 ‘존중과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 내의 자원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삶의 새로운 계기를 맞는 기쁨을 그린다.
<세계의 전부>는 자기돌봄을 하고 있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정신장애여성이 스스로를 돌보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보다 풍요롭게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앞서 가는 활동가들과 함께 정신장애당사자들의 주장과 이유를 확인하고 잠들어 있던 스스로를 깨우면서 세영은 한 걸음 더 생을 향해 전진한다. 니체는 일상의 중요함에 대해 말했다. 그곳으로부터 사상의 밑바탕이 구성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일상의 감수성을 키워가며 사랑과 우정에 다다르는 모습을 따듯하게 그린 단편이다.
‘매드 서사’란 광기와 관련한 살아 있는 경험이 있는 정신장애인과 활동가가 개발한 서사로, 사람들이 광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신장애인으로 동료들간의 사랑과 우정에 대해 다루었던 것은, 지금껏 정신장애인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폄훼해 왔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에게는 내면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범죄율보다 현격히 낮다. 그럼에도 정신장애인을 반사회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혹은 어떤 감정의 결여, 이해할 수 없는 생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자신의 『통치론 단편』에서 ‘법적 허구’란 개념을 만들었다. 이것은 개인들에게 결함의 감각을 계속 생산함으로써 반대급부로 법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생산하는 환영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정체성을 새롭게 창조해내지 않는다면 계속되는 사회적 결함의 감각의 증가 속에서 박탈과 압제의 정도를 증가시킬 뿐이다.
낙인과 억압과 배제에 짓눌려 있는 정신장애인들에게도 사랑의 이야기는 필요하다. 고립된 삶에 찾아드는 사랑에 대한 서사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