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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화, 교육 - AI가 풀어쓴 하버드 클래식 총서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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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화, 교육 - AI가 풀어쓴 하버드 클래식 총서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토마스 헉슬리 (지은이) 
  • 출판사위즈덤커넥트 
  • 출판일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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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리 보기>
몇몇 사람들은 기억할 텐데, 6년 전 나는 이 도시에서 유명한 동료 시민 조셉 프리스틀리의 유산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사후의 명성으로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고인이 된 철학자의 영혼이 마침내 안식을 찾았기를 바란다.
나는 분별력이 있고 합리적인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생 동안이나 뒤늦게 얻은 명성을 궁극적인 성취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프리스틀리의 평생 작업은 그가 지식을 추구하고 지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원동력이 되는 자유로운 사고를 장려하는 것을 더욱 높게 평가했다는 걸 명확히 보여준다.
프리스틀리가 오늘 우리와 함께했다면, 그의 첫 발견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보다 우리의 모임을 더 기뻐했을 것이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고, 열심히 모은 부를 화려한 사치나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현명하게 쓰는 모습을 보며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굳은 믿음이 든든해질 것이다. 스스로 노력할 준비가 된 현재와 미래 세대를 지원하자.
우리가 이 점에는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프리스틀리의 강렬한 물리학 열정을 나누며 그처럼 보이는 물리학과 멀리 떨어진 분야에서도 과학 교육의 유익함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이해는 조시아 메이슨 경이 미들랜드 주민들에게 베푼 기부금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 필수적이다.
나는 요즘 대학생들이 조시아 메이슨이 이름 붙인 대학의 설립이 100년 전보다 독특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육을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 속에 중요한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이런 갈등은 프리스틀리 시대 이전부터 시작됐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세기에 고전 문학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현대 작품의 지지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약 30년 전 물리학이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그 역학이 바뀌었다.
다양한 그룹을 대표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어 보인다. 모두가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 고릴라 부대처럼 약간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룹에 대한 상당한 경험을 갖고, 현재 상황과 지속적인 평화가 요구하는 바를 이해하는 사람의 관점은 가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를 활용해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통찰력을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을 표준 교육에 통합하려는 초기 제안이 조심스럽게 나온 후, 과학 교육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반대에 부딪혔다. 첫째로,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즈니스 전문가들이 이들을 무시했다. 둘째로, 고전 학자들이 이를 거부하며 문화유산을 지키고 균형 잡힌 교육의 관문 역할을 했다.
<추천평>
"찰스 다윈의 열렬한 옹호자였고, 진화론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과학계의 주요 주제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한 저자가 쓴 과학과 사회, 문화, 과학 교육 등에 대한 에세이 3편이다.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과학적 주제와 사안을 바라본 관점이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초창기 낙관적 과학론의 모범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 위즈덤커넥트 편집부

저자소개

잉글랜드의 일링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역 사립학교의 교사였다. 하지만 재정난으로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여덟 형제자매 중 막내였던 헉슬리는 초등교육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그래도 런던에서 결혼해 살고 있던 누나의 집에서 생활하며 왕성한 독서를 할 수 있었고, 과학은 물론 고전문학, 철학, 외국어 등을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가며 공부했다. 1845년 채링 크로스 병원 의학교에서 학위 과정을 마친 뒤 1846년 왕립 외과의 대학의 시험을 통과하고, 곧이어 남양 지역을 탐사하는 영국 군함 래틀스네이크호에 보조 외과의 자격으로 승선해 4년간 근무했다. 그동안 호주를 비롯한 남양 지역 해양 동물의 형태학, 비교해부학, 고생물학적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 런던으로 보냈고, 그중 일부는 그가 영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학계에 발표되기도 했다. 귀국 후 과학인이 되기로 결심한 헉슬리는 1854년, 당시 새로 설립된 국립광산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후 헉슬리는 평생 영국 사회 내에서 과학 분야가 문화적 권위를 지니는 중요한 활동임을 강조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8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도시 빈곤층이나 노동자의 임금 문제와 같은 영국 제국 내부의 정치적·사회적 갈등, 그리고 외국과의 무역이나 식민지 문제에 대한 갖가지 사색에 잠겼다. ≪진화와 윤리≫는 그 와중에 행해진 강연이다. 이 글이 그의 총서 마지막 권을 장식하며 출판된 다음 해인 1895년 6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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