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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딘 대공의 죄 - 브라운 신부 (커버이미지)
알라딘
사라딘 대공의 죄 - 브라운 신부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G. K.체스터턴 (지은이) 
  • 출판사위즈덤커넥트 
  • 출판일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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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리 보기>
플랑보는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사무실에서 떠나와 한 달간 휴가를 보냈다. 그는 작은 범선을 타고 갔는데, 너무 작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노를 젓는 배에서 보내야만 했다. 게다가 그는 동부 카운티의 작은 강에서 보트를 타고 초원과 옥수수밭을 지나 육지를 항해하는 그의 작은 보트가 마법의 배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강을 항해했다. 이 배는 두 사람이 겨우 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에 생필품만 실을 수 있었고, 플랑보는 자신의 특별한 철학에 따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배에 실었다.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연어 통조림,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장전된 리볼버, 언제든 기절할 경우를 대비한 브랜디 한 병, 언제든 죽을 경우를 대비한 신부 한 명 등 네 가지 필수품으로 짐을 줄인 것이다. 그는 이 가벼운 짐을 실은 채, 작은 노퍽 강을 따라 기어 내려가면서 마침내 브로드 강에 도달하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강변으로 돌출된 정원과 초원, 강의 수면 위에 비친 저택이나 마을을 즐기고 웅덩이와 구석에서 낚시를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강 주변을 껴안는 것을 즐겼다.
진정한 철학자답게 플랑보는 휴가에 아무런 목적이 없었지만, 진정한 철학자답게 변명거리가 있었다. 그는 일종의 반쪽짜리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목적의 성공이 휴가를 장식할 정도라고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동시에 실패가 휴가를 망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수년 전, 도둑의 왕이자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던 시절, 플랑보는 종종 찬사와 비난, 심지어 사랑에 대한 격렬한 편지와 말들을 받았지만, 왠지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그것은 영문 소인이 찍힌 봉투에 담긴 단순한 방문 카드였다. 카드 뒷면에는 프랑스어와 녹색 잉크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은퇴 후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면 나를 만나러 와주십시오. 나는 내 시대의 다른 모든 위인들을 만났기 때문에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한 형사가 다른 형사를 체포하게 만든 당신의 트릭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 카드 앞면에는 "사라딘 대공, 리드 하우스, 리드 아일랜드, 노퍽 주" 라고 적혀 있었고, 그것은 귀족 가문의 공식적인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는 대공이 남부 이탈리아 출신의 훌륭하고 세련된 인물이었다는 것 외에는 대공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젊었을 때 그 대공이 고위층 유부녀와 도피 생활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교계에서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시칠리아의 절벽에서 몸을 던진 것으로 보이는 모욕당한 남편의 자살이라는 또 다른 비극 때문에 남성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고 한다.
<추천평>
"굉장히 짧은 이야기이지만, 끝까지 관심을 놓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브라운 신부 이야기를 더 많이 찾아서 읽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 Pop, Goodreads 독자
"내가 처음으로 읽은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작품이었다. 나는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엄청나게 흥미로운 작품임을 깨달았다. 조만간 다른 작품들도 읽을 예정이다."
- Jared, Goodreads 독자
"나는 작가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그의 문체는 유머가 넘치면서 매력적이고, 그의 인물들은 굉장히 흥미로우면서 복합적이고,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를 끌어낸다. 이 작품은 브라운 신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편 중 하나이고, 이것을 읽게 되면 바로 다음 작품을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 Gilip, Goodreads 독자

저자소개

매력적인 성직자 탐정 브라운 신부의 활약을 담은 작품들로 추리 문학의 거장이 된 영국 작가. 1874년 영국 런던 켄싱턴의 중류층 가정에서 출생했다. 명문 세인트폴 스쿨을 졸업한 후, 슬레이드 미술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1900년 첫 시집 『놀이하는 회색 수염』을 출간했으며, 1904년 첫 소설 『노팅 힐의 나폴레옹』을 출간했다. 1911년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순진』을 발표했다. 크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이 시리즈는 이후 『브라운 신부의 지혜』(1914), 『브라운 신부의 의심』(1926), 『브라운 신부의 비밀』(1927), 『브라운 신부의 추문』(1935) 등 총 5권의 책으로 연이어 출간됐다. 소설가로서뿐 아니라 비평가로서도 크게 활약한 체스터턴은 평소 다양한 사회 비평들과 문학 평론들을 기고하곤 했으며, 조지 버나드 쇼, 버트런드 러셀, H. G. 웰스 등 당대의 지성인들과 논쟁을 벌이며 크게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1925년부터 직접 잡지 『지케이 위클리』를 발행하여 글을 발표했으며, 그가 사망할 때까지 이 잡지는 계속 발행되었다. 1936년 비콘스필드의 자택에서 사망하여 인근의 로마 가톨릭 묘지에 묻혔다.
그 밖의 체스터턴의 작품으로는 추리 소설 『괴짜 상인 클럽』(1905), 『목요일이었던 남자』(1908) 등을 비롯하여, 시집, 에세이집, 문학 평론서, 그리스도교 서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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