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상세보기

철학 편지들 - AI가 풀어쓴 하버드 클래식 총서 (커버이미지)
알라딘
철학 편지들 - AI가 풀어쓴 하버드 클래식 총서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볼테르 (지은이) 
  • 출판사위즈덤커넥트 
  • 출판일2024-03-19 
보유 1, 대출 0, 예약 0, 누적대출 0, 누적예약 0

책소개

<미리 보기>
나는 그 독특한 집단의 신앙과 역사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고 믿었다. 더 자세히 알아볼 요량으로, 영국의 저명한 퀘이커교도 중 한 명을 방문했다. 그는 런던 근처의 소박하되 단정한 집에 살고 있는 은퇴한 사업가였다. 성격이 온화하며 건강하고 명랑해 결코 아프지 않는 퀘이커 노인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상징하는 단순한 옷을 입었다. "친구여,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뭐든 말하세요."라고 그가 제안했다. "선생님." 나는 사회적 미묘함을 관찰하면서 대답했다. "내 호기심이 당신을 화나게 하지 않기를 바라며 당신이 나에게 종교에 관해 가르쳐주시기를 희망합니다." 퀘이커는 우리 동포들의 과도한 매너를 언급하며 나의 관심을 환영했고 식사에 초대했다.
기도로 마련된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세례에 관해서부터 그 신앙을 물었다. "세례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는 아니었고 그의 동료 퀘이커교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놀라 "그럼 당신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겠군요!"라고 외쳤다. 퀘이커는 침착하게 본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확신했지만, 물 세례가 필수는 아니라고 여겼다. 나는 요한에 의해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은 것을 들먹이며 충격받았다. 그는 그리스도가 다른 이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으셨고, 그들은 요한이 아닌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반박했다.
나는 그에게 세례를 권유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지만, 그는 세례가 고대 유대인들의 의식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며 진정한 기독교 세례는 영적인 세례라고 말했다. 그는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과 종교적 관행을 인용했으나 모순되는 구절에는 눈을 감은 것 같았다. 나는 깊은 확신으로 논쟁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고 화제를 바꿨다.
<추천평>
"볼테르가 영국에서 사는 동안 집필된 편지들을 모은 책이다. 그가 관찰한 영국 정치와 정부 구조, 종교, 과학, 그리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다. 지속적으로 압제를 받고 있고, 군주의 손가락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에서 온 볼테르는 영국인들 일반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부러워한다. 물론 이것은 상대적인 비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알 듯, 현대적 의미에서의 자유가 당시 영국에 존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볼테르의 생각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고, 이전에는 그의 팬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팬이 되어가고 있다."
- Pioniee, Goodreads 독자
"볼테르와 루소는 보통의 경우 같은 부류의 사상가로 분류되어, 18세기 계몽주의의 쌍둥이 기둥으로 간주된다. 볼테르의 경우, 이성과 개혁에 대한 주장으로, 루소의 경우 낭만주의와 혁명에 대한 강조를 기억된다. 그 두 사람의 책을 비교해서 읽으면서, 나는 누가 더 나은지 깨달았다. 루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사상가이지만, 그의 글은 너무나도 음침하고 비합리적이어서 그것을 읽은 것 자체가 매우 불쾌하다. 하지만 볼테르는 유머가 넘치고, 매력적이고 기분을 좋게 만든다. 볼테르의 비판적인 풍자가 기분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출간 당시, 프랑스 사람들 대부분은 매우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영국에 대한 볼테르의 칭찬이 프랑스에 대한 비판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열린 사회에 대한 열망, 종교에서부터 문학, 과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주제가 매력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토록 적은 분량에 엄청난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
- Roy Kotz, Goodreads 독자
"볼테르는 위대한 철학자인데, 그의 특유의 풍자적 비평 스타일은 이 책을 이상하게 재미있게 만든다. 이 책에는 프랑스인과 영국인 사이의 여러 주제와 비교를 포함하는 25개의 철학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편지에는 뉴턴, 데카르트, 로크 등과 같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에 대한 볼테르의 의견이 포함되어 있다. 볼테르는 파스칼의 사상을 비판하는 데 가장 긴 편지를 할애했고 이것이 이 책의 일종의 결론이었다.:
- Marwan, Goodreads 독자
"볼테르는 평소의 재치, 풍자, 유머를 혼합하여 여전히 봉건적이었던 프랑스의 앙시앙 레짐보다 영국의 자유주의 제도를 높이는 동시에 영국을 부드럽게 조롱한다."
- Zach, Goodreads 독자
"고전 걸작 중 하나이다. 종파, 성향, 사회 계층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인간의 영혼은 동일하게 유지되며 자신이 느끼는 것과 원하는 것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은 그 자체로 속이고, 믿고, 따르고, 또한 다른 영혼을 비난하는 것이다."
- Attarri, Goodreads 독자

저자소개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작가이자 시인, 극작가, 비평가이다.
1694년 11월 21일 파리의 부유한 공증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704년 예수회가 운영하던 루이 르 그랑 학교에 입학하였다. 1711년 루이 르 그랑을 졸업하고 법과 대학에 입학했으나 자유사상가들의 모임 ‘탕플’에 출입하며 많은 자유사상가들과 교류하였다. 1717년 오를레앙 공의 섭정을 비판하는 풍자시로 인하여 바스티유 감옥에 11개월간 수감되었고, 옥중에서 『오이디푸스』를 집필, 출옥 후 공연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때부터 ‘볼테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726년 귀족 로앙 샤보와 싸움에 휘말려 다시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면서 제정치하의 불평등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영국으로 망명한다는 조건으로 석방된 그는 1734년, 영국에서의 경험들을 엮어 『철학서간』을 출간하였다. 이후 검열당국에 의해 금서 조치가 내려져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그는 후견인이자 연인이었던 샤를레 부인 영지로 도피하여 10년간 은둔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1750년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에서 머물렀으며, 1751년 『루이 14세의 세기』를 출간하고 베를린을 떠나 수년 동안 제네바에서 머물다가 1758년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가까이의 페르네에 정착하여 다음 해 1759년 『캉디드』를 출간하였다. 1778년 파리에 귀환하여 마지막 작품 『이렌』을 상연하였고, 긴 여행에 따른 피로와 연일 이어지는 환영행사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해 5월 30일 사망하였다. 1791년 그의 유해는 프랑스의 역사적 위인들을 모시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볼테르는 사상의 자유, 종교적 관용, 이성과 평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억압에 맞서던 투사였다. 그는 드니 디드로, 장자크 루소와 함께 대표적인 계몽 사상가로 손꼽히는 인물이자 ‘종교적 관용’을 뜻하는 똘레랑스를 프랑스 정신의 일부분으로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한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