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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용 수필집 -4편- (나는 왕이로소이다. 할미꽃 대표작품 소설)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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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용 수필집 -4편- (나는 왕이로소이다. 할미꽃 대표작품 소설)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홍사용 
  • 출판사유페이퍼 
  • 출판일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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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1900년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본관은 남양. 아호로는 노작, 소아, 백우 등이 있지만, 주로 '노작'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는 생후 100일만에 통정대부 육군헌병 부위를 지낸 아버지의 근무처를 따라 서울 재동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8세까지 살다가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되자, 그가 태어난 용인군 농서리에서 멀지 않은 화성군 동탄면 석우리(돌모루) 492번지로 이사하여 휘문의숙에 입학할 때까지 그곳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홍사용은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그 해 6월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면서 수필「청산백운」과 시「푸른 언덕가으로」를 썼다. 수필「청산백운」은 휘문 교우 정백과 함께 쓴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홍사용의 최초의 작품이 되고 있다.

박종화, 정백 등 휘문 교우들과 함께 유인물 <피는 꽃>과 서광사에 <문우>를 발행한 것을 비롯하여, 재종형 홍사중을 설득하여 문화사를 설립, 문예지 <백조>와 사상지 <흑조>를 기획했으나, <백조>만 3호까지 간행되었다. 그의 문단활동은 <백조> 창간과 함께 본격화되어 <개벽> <동명> <여시> <불교> <삼천리문학> 등과 같은 월간지와 일간신문에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을 전후하여 홍사용은 전국을 방랑하다 돌아와 자하문 밖에서 한방의학을 공부하여 만년의 생계를 삼았다고 한다. 8.15 해방이 되자 그는 곧바로 <근국청년단>을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지병인 폐환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7년 짧은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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