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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민병덕 (지은이)
- 출판사책이있는마을
- 출판일2017-03-31
- 등록일2020-03-24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23 M
-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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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잡채 하나로 한 시대를 주름잡아?
잡채를 맛있게 만들어 왕의 입맛을 사로잡음으로써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인물이 있다. 조선시대 광해군은 이충이란 자를 무척 아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만든 잡채가 광해군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충은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다 바치곤 했는데, 특히 여러 가지 채소를 섞어 만든 잡채는 그 맛이 오묘하여 광해군은 이충이 음식을 가져오기를 기다려 수저를 들곤 했다. 그는 외척과 혼인을 맺어 궁궐과 결탁하였으며, 간사한 무리에게 붙어서 관리 후보자로 추천되면서 높은 품계로 뛰어올라 성리학자들의 배척을 받았다. 그런데도 왕은 그가 임금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날로 더 총애하였으며, 그래서 당시에 어떤 이는 “잡채상서 세력은 당할 자 없구나.”라고 한탄하였다. 잡채 하나 잘 만들어 임금의 총애를 받아 높은 벼슬에 오른 일을 조롱한 것이다. 광해군은 이충이 죽자 우의정에 제수하였는데 죽고 난 후에 추증하지 않고 곧장 재상에 임명하는 것은 이충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공인중개소와 복덕방이 무슨 관계?
요즘의 공인중개소를 과거에는 복덕방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둘은 공통점이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 유래를 알면 실생활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 역사가 우리 삶에 얼마나 가까이, 친숙하게 다가와 있는지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속담이 있듯이, 예전에 제사를 지낼 때 갖은 떡을 진설하였다. 진설한 떡의 가짓수로 그 집안의 가풍과 부를 나타냈다. 그리고 조상이 진설한 음식에 복덕(福德)을 남겨놓았다고 여겼으므로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나누어주는 곳을 복덕방이라고 하였다.
복덕방에는 떡을 받으려고 인근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 사람들은 “누구네 땅을 내놓았네.”, “누가 누구네 땅을 샀네.”, “내가 산을 사려는데 누가 내놓았는지 알 수 있나?” 하면서 동네의 이모저모를 말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졌고, 이런 까닭으로 후에 부동산을 중개하는 곳을 복덕방이라 부르게 되었다.
우황청심환만 해도 그렇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산 우황청심환을 무조건적으로 열광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우황청심환의 뛰어난 효능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황청심환은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의 필수품이었다. 국경을 통과할 때 그곳을 지키는 병사나 관리에게 제공하면 무사히 중국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그만큼 효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고종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사신으로 다녀온 뒤 저술한 《열하일기》를 보면 그들이 조선의 우황청심환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알 수 있다.
청나라 관리들은 너도나도 우황청심환을 찾았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우황청심환은 워낙 가짜가 많아 약효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보고 싶은 책을 살 돈이 없을 때는 우황청심환으로 샀다.
김밥을 싸는 김, 왜 ‘김’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김은 원래 해태, 해의 등으로 불렸다. 그런데 왜 ‘김’이라고 하였을까?
조선 인조 때 김여익이라는 사람이 병자호란을 겪은 뒤 광양으로 낙향하였다. 그는 광양 사람들이 고기잡이 외에는 수입이 없어 생활에 많은 곤란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해태를 양식하게 하였다. 기르는 어업의 시작이었다.
그 후에 이 해태를 현종에게 진상하게 되었는데, 맛을 본 현종이 상궁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갑작스런 임금의 물음에 상궁은 대답을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은 다시 물었다.
“어디에 사는 누가 올린 음식인가?”
“광양에 사는 김 아무개가 올린 음식이옵니다.”
상궁의 말에 현종은 말했다.
“이제 이것을 김 아무개의 성을 따서 김이라고 하여라.”
그리하여 해태라고 불리던 것이 김이 되었다.
그런데 김을 양식하는 방법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다.
오늘날 카페의 원조인 다방,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보면서 과일, 술, 약 등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관청으로 다방이 있었다. 관청에서는 ‘다시(茶時)’라 하여 차 마시는 시간이 있을 만큼 차를 즐겼다. 오늘날의 ‘티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세종 때에는 글씨, 계산, 시, 가례, 육전의 과목 중 세 가지만 합격하면 다방의 관리로 채용하는 시험까지 실시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불교가 쇠퇴하면서 차 문화는 승려와 일부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였고 그 대신 술 문화가 발달하였다. 그래서인지 대중적인 다방은 발달하지 않고 술을 파는 주점이 발달하였다.
조선 말기 일본의 침략을 두려워한 명성황후는 일본의 침략을 막을 길은 러시아의 힘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때마침 한반도를 침략하려던 러시아는 공사 베베르의 처형인 독일인 손탁(孫澤: Antoinette Sontag)을 명성황후에게 접근시켰다. 평소 뛰어난 요리 솜씨와 말솜씨를 지닌 손탁은 명성황후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서양 소식과 화장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아가 명성황후와 고종에게 커피를 처음으로 대접하였다. 이후 고종은 커피 마니아가 되었으며, 손탁은 1890년에 정동에 있는 사옥을 하사받아 손탁호텔을 지었다.
손탁호텔의 1층에는 정동구락부가 있었으며,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전문점 카페라 할 수 있다. 이때 커피는 가비(加菲: coffee) 또는 가배(加?: cafe)로 불렸다. 커피로 불리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일본식 표현이 영어식 표현으로 바뀌면서부터이다. 일반 백성들은 커피가 마치 한약을 달인 탕국과 같다고 하여 양탕국으로 불렀다.
먹을거리의 맛과 멋을 찾아가는 재미있는 역사 기행
저자 민병덕 선생님은 20여 년간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학생을 비롯한 독자들이 역사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생활사 중심의 글쓰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 어렵고 지루한 이론서 중심의 어려운 역사가 아닌, 쉽게 접하는 역사를 소개함으로써 역사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이 책 《밥상 위의 한국사》 또한 그 연장선에서 기획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의식주,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음식의 유래를 비롯하여 그것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까지 서술함으로써 단편적인 역사에 그칠 먹을거리에 다양한 역사가 담겨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저자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나눴던 이야기이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먹을거리를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의 맛과 멋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먼 옛날이 아닌 바로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책과 함께 재미있고 맛있는 먹을거리를 만나러 여행길에 나서보기를 권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먹을거리에 담긴 역사 이야기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룬 사건 중 하나인 프랑스대혁명도 작은 ‘빵’ 때문에 일어난 것을 보면, 먹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主食)인 밥부터 즐겨 먹는 술, 떡, 김치, 차 등과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우황청심환에 이르기까지 우리 한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대표적인 먹을거리 32가지를 다루면서, 그것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까지 서술하였다. 가령 ‘우황청심환’은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의 필수품이었다. 국경을 통과할 때 경비 관리에게 제공하면 무사통과될 정도로 인기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황청심환의 원천이 중국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우황청심환은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필수 쇼핑 품목에서 빠져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소소한 이야기부터 음식들과 연결된 사건과 인물들에 관련된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소개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이후 경기도 용인시 용동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현재 교감으로 있다. 1990년부터 한국사 관련 저술을 기획했으며, 역사 소설가 이재운 작가와 함께 한국사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MBC 문화방송과 EBS 교육방송 등에 출연,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지은 책으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요?》(1, 2), 《옛날에도 변호사가 있었나요》, 《이황-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26》, 《이이-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27》, 《박은식-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40》,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오천년 우리 부자》, 《역사인물백과》, 《깨어나라, 고구려》, 《한국의 인물 시리즈》(7종),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 《김만덕》, 《LTE 한국사》, 《LTE 세계사》, 《반역의 한국사》, 《밥상 위의 한국사》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01 옛날에는 왕이 음식을 다 만들었다면서요?
02 옛날에도 다방이 있었나요?
03 우리 조상들은 1년 12달 12가지의 떡을 달리 먹었다면서요?
04 김치는 언제부터 담가 먹었나요?
05 옛날에는 감주가 술이었다고요?
06 소주를 약으로만 썼을 뿐 일상적으로 먹는 것은 금지했다면서요?
07 옛날에는 장맛으로 한 해의 가운을 점쳤다면서요?
08 옛날에는 절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았다면서요?
09 옛날에는 동지가 작은설이었다면서요?
10 발해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면서요?
11 옛날에도 시험을 칠 때에 엿을 붙이거나 먹었나요?
12 옛날에도 얼음을 보관했다가 먹었나요?
13 밥은 하루에 몇 번이나 먹었어요?
14 옛날에는 임금 앞에서도 담배를 피웠다면서요?
15 옛날에 임신을 하면 계란을 먹지 않았다면서요?
16 수박을 처음에는 먹지 않았다면서요?
17 고추나 후추 같은 향신료는 언제 들어왔나요?
18 우리나라 인삼을 왜 고려 인삼이라고 하나요?
19 잡탕이 궁중에서 먹던 음식이라면서요?
20 조선시대에 감자 재배를 금지하기도 했다면서요?
21 우황청심환은 우리나라 고유의 한방약이라면서요?
22 언제부터 소를 농업에 이용하기 시작했나요?
23 먹는 김은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24 보신탕이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면서요?
25 두부가 왕릉에서 발달한 음식이라면서요?
26 중국과 일본은 숟가락을 거의 쓰지 않았다면서요?
27 설탕이 약으로 쓰였다면서요?
28 조선시대에 잡채를 잘 만들어 판서가 되었다면서요?
29 옛날에도 밸런타인데이가 있었다면서요?
30 보쌈은 양반이 노비에게 내려준 음식이라면서요?
31 두 갈래 무가 여자들에게 인기 있었다면서요?
32 고구려가 동아시아를 지배한 이유 중 하나가 소금을 차지했기 때문이라면서요?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