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징 3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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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오규 소라이
- 출판사"소명출판"
- 출판일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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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자 서문안연자로헌문위령공계씨양화미자자장요왈
저자소개
에도시대 유학자, 사상가로 고문사학(古文辭學)을 창시하여, 독특한 일본 유학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일본사상사에서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되기도 하는 그는 1666년에 에도[江戶], 즉 지금의 동경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궁정에서 일하는 의사였는데, 1679년에 당시 쇼군[將軍] 도쿠가와 쓰나요시에게 문책을 받고 가즈사노지방[현재의 지바현]으로 유배가 칩거하였다. 소라이는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으로 가족을 따라가서 27세가 되던 1692년까지 살았다. 부친이 사면을 받은 덕분에 그는 비로소 가족과 함께 에도로 복귀할 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이미 하야시 라잔[林羅山]가문에 입문하여 유학을 배운 소라이는 에도에서 젊은 승려들을 가르치다가, 우연히 쇼군의 총신이었던 야나기사와 요시야스에게 발탁되어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44세가 되던 1709년에 쇼군 쓰나요시가 사망하자, 오랫동안 소라이를 지원해주었던 야나기사와도 세력을 잃고, 실각하였다. 이 때문에 소라이도 공직생활에서 밀려났는데, 순식간에 생활의 근거를 잃은 그는 그동안 살고 있던 야나기사와의 저택에서 나와 니혼바시[日本橋] 가야바쵸[茅場町]에 학당[겐엔쥬크]을 열고 자립하였다. 그는 이 학당을 중심으로 학생을 모집하여 가르쳤는데, 이것이 소라이학파[겐엔학파]가 형성된 계기였다. 소라이학파는 개인의 도덕보다는 정치적인 상황과 제도를 중시하는 입장을 가지고 주자학을 비판하고, 유학사상을 연구하였다. 특히 소라이는 고대의 육경(六經)을 바탕으로 공자의 정치사상을 규명하고자 하였는데 그 성과가 『논어징(論語徵)』이다. 소라이의 제자로는 경제 이론에 밝은 다자이 슌다이[太宰春台], 시문에 밝은 핫토리 난가쿠[服部南郭] 등이 있었다. 소라이의 영향은 다산 정약용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데, 소라이의 제자 슌다이는 특히 다산이 그의 글을 인용하는 등 존중한 학자였다. 소라이는 57세 때(1722년)에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신임을 얻어 그 자문이 되기도 하였으나 6년 뒤, 1728년에 6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변도(弁道)』, 『변명(弁名)』, 『논어징(論語徵)』, 『대학해(大學解)』, 『태평책(太平策)』, 『정담(政談)』, 『학칙(學則)』 등이 있다.
목차
역자 서문안연자로헌문위령공계씨양화미자자장요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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